[비로봉에서] 공허한 메아리에 그친 학교폭력 피해자 코스프레
[비로봉에서] 공허한 메아리에 그친 학교폭력 피해자 코스프레
  • 심규정
  • 승인 2023.04.09 20: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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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이 아픔을 겪은 만큼
상대 학생의 아픔의 크기도
헤아려야 하는 게 지도자의 덕목이 아닐까?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올해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아들은 25살이다. 불현듯 아들 생각이 나면 중학교 2학년 때 학교폭력 사건의 기억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사건은 이랬다. 친구가 다른 학생과 카톡 대화방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아들이 친구를 대신해 장난삼아 카톡을 날린 게 상대학생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친구가 며칠 뒤 아들 교실로 찾아와 맞짱을 뜨자고 했다. 학교에서 꽤 알려진 학생도 몇몇 동행했다. 

아들은 싫다고 했다. 그랬더니 상대학생이 먼저 한 대 때렸다. 화가 치민 아들도 한 방 먹였고, 쓰러진 그 학생을 몇차례 짓밟았다. 학교폭력대책위원회 조사에서 아들은 일방적으로 가해 학생으로 몰렸다. 필자는 너무 억울했다. 물론 원인 제공은 아들이 했지만, 다수의 학생이 몰려와 위력을 과시하며 먼저 폭행했고 아들로서는 방어권을 행사한 쌍방폭력이라고 강하게 어필했다.

경찰조사를 거쳐 검찰에 송치된 이 사건은 결국 학부모 간에 합의해서 불기소 처분 또는 공소권 없음 결정이 났다. 이 과정에서 학교폭력대책위원회, 경찰서, 검찰청에 불려다녔다. 이 사건이 기억의 서랍에서 리셋되지 않은 채 토막토막 웅크리고 앉아 지금도 뇌리를 마구 휘젖고 있다. 자식을 금지옥엽으로 여기는 것은 세상의 모든 부모들의 인지상정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들의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 사건을 구구절절 끄집어낸 것은 최근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벌금 800만 원을 선고받은 원강수 시장 부인의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시발점은 원 시장 부부가 딸이 학교폭력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지방선거 전 제보를 받고 취재에 나서자, 원강수 후보 부부가 회사에 찾아왔고 부인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보도자제를 요청했다. 

“보도되면 딸아이의 충격이 클 것 같으니 보도는 하지 말아달라”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보도됐다. 시민의 알권리, 제보자의 권익, 선출직 공직 후보와 그 가족이 연루된 믿을만한 정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보자는 국민의힘 관계자였다. 학교폭력 사건이 엉뚱하게 정보통신망법위반 사건으로 비화된 것은 원강수 시장 부부의 삐뚤어진 자기중심적 사고와 상황인식 결여에 있다. 

자신의 딸이 피해자라며 딸의 노트북에 로그인된 딸 친구의 SNS대화 내용을 학교 측에 증거자료로 제출한 게 화근이었다. 피해 학생과 다른 친구가 비밀방에서 자신의 가족을 비방해 딸이 그 충격으로 온전한 학교 생활이 어려웠다는 게 이유다. 지극히 사적인 대화 내용을 몰래 취득해 활용한 것이다. 그러나 주구장창 주장한 학교폭력은 행정심판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결국 원강수 시장 부인은 30년 교사 생활의 명예가 나락으로 추락한 것이다. 물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기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이지만. 

이 사건 재판 과정을 내내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 형국, 37만 시민의 얼굴이자 2,000여 공직자의 대표인 시장과 그의 부인이 학교폭력 피해자 코스프레로 일관한 모습, 기소 이후 재판 내내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는 것은 정말 웃픈 현실이다. 억울함을 호소하고 사회가 너그럽게 봐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추상과 같은 법의 잣대에서 재단되어야 한다. 이게 바로 법치의 근간이다.

내 자식이 아픔을 겪은 만큼 상대 학생의 아픔의 크기도 헤아려야 하는 게 지도자의 덕목이 아닐까. 사건 초기 자존심을 내려놓고 서로 사과나 유감을 표명하면 간단하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고 본다. 시민의 행복을 누구보다 강조한 게 원강수 시장이다. 그에게 묻고 싶다. 기소 이후 무려 1년 가까이 사건을 질질 끌면서 얻은 게 과연 무엇이냐고. 

원강수 후보는 지방선거 당시 본지에 “이 사건은 기껏해야 과태료 10만 원~15만 원 정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듯했다. 시민의 대표가 되겠다는 후보가 이 정도의 안일한 상황인식이라니 혀를 끌끌 찰 노릇이다. 그래서인지 원강수 시장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 걱정된다.

소귀에 경읽기 일 수 있겠지만, 글문을 닫으면서 이 말을 남기고 싶다. 앞뒤로 꽉 막힌 경직된 사고, 뒤틀린 강대강 심보는 덧셈보다는 뺄셈의 삶으로 점철된다는 사실을. 강하면 부러진다는 만고의 진리를. 시장이라는 천근만근의 무게감을 갖고 매사 진중하고 사려깊게 처신해야 한다. 시장직은 만인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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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진 2023-04-11 20:06:08
원강수는 퇴진만이 답이다!!! 원주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무능하고 독선적 시장일 뿐... 지도자 한 사람 잘못 뽑아 놓은 결과가 너무도 참담하다. 나라 전체도 그렇고 원주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