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죽음의 협곡=소금산 출렁다리’ 오명 씻기
[비로봉에서] ‘죽음의 협곡=소금산 출렁다리’ 오명 씻기
  • 심규정
  • 승인 2023.05.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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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마나 한 미봉책보다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이
하루빨리 강구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미국 하버드대 생물학과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교수는 모든 인류에게 본능적으로 ‘녹색갈증’(BioPhilia, 생명애)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인간은 오랜 세월 진화를 거치면서 최적의 생태적 공간을 좋아하는 유전자를 갖게 된다고 한다. 미국의 동물학자이자 행동심리학자인 고든 오리언스(Gordon Orians) 교수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인간이 좋아하는 환경 조건을 첫째 먹을 것과 경쟁자를 먼 거리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트인 장소, 둘째 절벽 끝이나 작은 언덕, 산꼭대기 등 정찰이 편리할 것, 셋째 물과 음식을 얻을 수 있는 호수와 강을 꼽았다. 

안타깝게도 녹색갈증과 불협화음을 빚는 현장이 있다. ‘자살 다리’, 혹은 ‘죽음의 협곡’이란 별칭이 따라붙기 시작한 원주시 지정면 소금산출렁다리를 말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요관광지점 입장객 통계에 따르면 소금산출렁다리를 비롯한 간현관광지 소금산 그랜드밸리에는 2019년부터 2022년까지 210만 4,402명이 방문해 전국적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곳은 지난 2019년 이후 모두 4명이 숨졌다. 사고 장소를 구체적으로 보면 출렁다리 입구 스카이워크 전망대에서 3명이, 등산로에서 1명이 각각 추락사 한 것으로 확인됐다. 잊힐 만하면 불쑥불쑥 터지는 사고에 시민들은 불명예스러운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을까 내심 걱정하는 눈치다. 소금산출렁다리 주변은 자살예방 시설이 매우 취약한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뛰어내릴 수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을 수도 있다. 

나라 안팎에서 자살다리란 별칭을 얻은 곳은 많다. 프랑스 작가 마르탱 모네스티에(Martin Monestier)는 20년간 추적 끝에 펴낸 ‘자살에 관한 모든 것’에서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파리 에펠탑, 중국 난징의 창장대교, 로마 파브리치오다리, 호주 시드니 갭 팍(Gap Park) 등 세계 10대 자살 명소를 꼽았다. 이 가운데 6곳이 다리다. 

소금산 출렁다리에서 발생하는 자살은 이들 명소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하지만 자살자 대부분 외지인이란 사실이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지난달 자살한 10대 여고생은 경기도 안산에서 소금산 출렁다리까지 와서 이승과 작별을 고했다. 깎아지른 바위 위에 그것도 높이 100m에 있어 여느 자살 다리보다 사체의 훼손 정도가 너무 심해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라는 게 소방 당국의 목격담이다. 

따라서 자살을 막기 위한 행정당국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과 유럽의 다리들은 자살방지 장벽과 상담 전화 부스를 설치하거나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는 문구를 부착해 자살 감소에 기여한 바 있다. 가까운 예로 인천광역시의회는 지난 2019년 ‘경인아라뱃길 교량의 자살예방시설 확충을 위한 촉구 결의안 심사보고서’를 채택했다.

국내 최초로 내륙운하에 건설된 경인아라뱃길은 지난 2012년 5월 건설됐다. 당시 보고서에 따르면 141건의 자살시도가 발생해 25명이 숨지고, 구조 85건, 안전조치 31건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의회는 각 기관에 자살방지 시설 설치, 수난 구조의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방안 마련, 자살방지 시설 유지관리에 적극 나서 줄 것을 주문했다. 

자살 사고가 되풀이되면서 이미 경고등이 켜진 소금산 출렁다리. 끔찍한 비극의 아우라가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결국 등골이 오싹한 위험다리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하나 마나 한 미봉책보다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이 하루빨리 강구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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