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를 묻다] 정오의 밥
[안무를 묻다] 정오의 밥
  • 임이송
  • 승인 2023.05.07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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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가 되면 어디서건
자신의 몸에 이로운 밥을
든든히 먹었으면 좋겠다.
때우는 것이 아니라
기쁜 일처럼 먹었으면 좋겠다.
△임이송 [소설가]
△임이송 [소설가]

사람들은 매일 어떤 음식을 먹으며 생명을 이어가고 먹는 기쁨을 누릴까. 우리집 밥상을 책임지는 나에겐 먹거리가 하루하루의 도전이자 과제다. 세상에 밥만큼 숭고한 것도 없어서 나는 먹는 것에 진심을 다한다. 최근 천 원으로 아침밥을 먹을 수 있는 대학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그 돈으로 아침밥을 먹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 한편엔 밥조차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슬픔이 느껴진다. 나도 대학에 다닐 때 하루에 한 끼밖에 먹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바쁜 직장인들도 아침을 간단히 먹거나 먹지 못하거나 않거나 한다. 그래서 점심이 중요하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은 밥심으로 살아간다. 음식을 섭취하는 방법은 나날이 진화하는데 내용인 음식물은 그에 걸맞은 방향으로 향상되는 것 같지 않다.

나는 매일 오전 10시 30분에 점심준비를 한다. 남편이 정오에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도 그 시간이면 점심을 먹을 것이다. 정오는 하루의 중심이다. 하루의 허리를 든든히 세우려면 점심을 잘 먹어야 한다. 나는 점심을 정성껏 짓고 또 정성들여 먹는다.

요즘은 장을 볼 때 한 가지의 재료로 두어 가지 반찬을 만들 수 있는 것들로 사온다. 야채와 고기와 생선과 양념류, 어느 것 하나 싼 것이 없다. 그러다보니 두루 쓰이는 식재료들을 사와서 이리저리 응용하여 반찬을 만든다. 영양까지 고려하여 매끼 다른 반찬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의식주는 인간의 기본욕구를 채워주는 틀이다. 집값은 다락같이 올랐다. 음식도 매일 필수 영양소를 섭취해야 하는데 가파르게 오른 물가는 서민들의 식탁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외식 물가 또한 깜짝 놀랄 만큼 올랐다. 집에서 먹든 밖에서 먹든 식사를 하는 일은 서민들에게 만만찮아졌다.

작은아이는 야근이 잦아 저녁도 밖에서 먹을 때가 많다. 안쓰러워 도라지를 까서 소금에 빡빡 문질러 숨을 죽이고 오이와 양파도 새콤달콤하게 절여 보냈다. 집밥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라 달래와 쑥과 미나리도 손질하여 같이 보냈다. 주말에 한 끼라도 제대로 해먹으라고.

음식은 몸도 유지하게 하지만, 정신도 관장한다. 먹는 음식에 따라 우리의 기분이 얼마나 달라지던가. 또한 먹은 음식과 몸으로 나타나는 결과처럼 인과관계가 정직한 것도 드물다. 손에 편하고 입에 당기는 것만 먹으면 머지않아 몸에 적색 신호가 나타날 것이다. 현대인들은 시간에 쫓겨서 또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서 아니면 귀찮아서 점점 간편한 먹거리를 찾고 있다.

누구든 매일 식탁을 차리는 일은 보통 성가신 게 아니다. 나 또한 가장 하기 싫은 일이 밥을 하는 것이다. 먹고 나면 속이 편하고 식구들을 위해 애쓴 것이 보람 있어 또 하게 되긴 하지만. 우리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돈을 버는데 정작 잘 먹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영양과잉과 건강한 몸은 엄연히 다르기에.

우리는, 카뮈처럼 거창한 정오의 사상을 주장하거나 이상의 소설에서처럼 정오의 사이렌이 울리면 백화점 옥상에 올라가 날아보는 건 하지 않더라도, 정오가 되면 어디서건 자신의 몸에 이로운 밥을 든든히 먹었으면 좋겠다. 때우는 것이 아니라 기쁜 일처럼 먹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조건들은 많다. 일 년 평균기온이 섭씨 13.9도인 것도 그 중의 하나라고 한다. 나는 온도도 좋지만, 맛있고 따뜻한 밥을 먹는 것에 최고의 방점을 찍고 싶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취약계층의 밥상이 위험해지고 국민들의 건강이 흔들리게 된다. 대학에 다닐 때 제대로 먹지 못한 대가를 나는 지금까지도 치루고 있다. 밥을 먹는 행위는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 중에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거룩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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