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학성 作 / 경우
[시가 있는 아침] 이학성 作 / 경우
  • 임영석
  • 승인 2023.05.07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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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境遇

이학성

둘은 다정한 연인사이 같았다.

자리를 나란히 차지하고 앉아서도 쥔 손을 놓지 않았고

서로에게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사랑의 수렁에 빠진 이들은 닮아간다 하던가.

그래서인가 흡사하게 빼닮은 두 얼굴은 금방 주위의 이목을 끌었다.

그럴 때다. 콩깍지가 눈에 씌어 상대방 말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그러니 앞에 선 노인을 놓치고 말았다.

가릉거리는 숨결에 꽤나 지척이었는데도

주고받는 밀어를 멈추지 못했다.

그래서 하마터면 저들이 내릴 때까지

서 있어야 했던 노인은

다른 이의 배려로 좌석을 양보 받을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더러 실수가 있는 법,

하지만 거듭되는 일이라면 용납하기 어렵다.

목격한 실상을 차근차근 내게 전한 이는

마지막 말에서 목소리를 떨며 약간 분개해 했다.

만일 자신이 사귀는 상대가

지하철 안의 그 사람이었다면, 불끈 주먹을 휘둘러

턱을 가격하는 시늉을 했거나

엉덩이를 걷어차며 단호히 그 자리에서 절교를 선언했으리라고.

이학성 시집 『늙은 낙타의 일과』,《시와반시》에서

요즘은 애나 어른이나 경우를 따지면 꼰대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당신 세대의 시절에나 그런 것이지 왜 그 잣대를 지금에 와서 들이대느냐고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걸으면 핀잔을 받기 일쑤다. 이학성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일상의 평범한 일들에서 부딪치는 삶의 갈등들이 주제다.  「경우境遇」도 그렇다. 이 말뜻은 사리나 도리를 말하지만, 사리나 도리라는 게 요즘 세상에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연인의 젊은 남녀가 노인을 보고도 자리 양보를 하지 않는 과정, 즉 사랑에 빠져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그러했다고 이해한다. 그 과정이 한 번이면 용납이 되지만 거듭되면 용납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노약자 좌석, 임산부 좌석 등을 비치해 놓고 있다. 그런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양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세상이 돈으로만 해결하고, 돈이 최우선이라는 인식을 하면서부터 공동체 생활의 붕괴, 그것이 최일선의 우리 삶을 삭막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뉴스들을 보면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서 있다. 그러니 개인과의 관계에 있어, 사뭇 다른 남남끼리의 관계는 더 무엇을 말하랴 싶다. 그래도 옛날에는 사형師兄, 인형仁兄, 하며 손편지를 주고받을 때 예의라는 것이 있다. 그 예의가 실종되고부터 경우도 실종되었다. 어쩌랴, 솜처럼 부드러우면 무시당하고, 돌처럼 단단해야 무시당하지 않는 세상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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