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환식 作 / 생각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시가 있는 아침] 김환식 作 / 생각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 임영석
  • 승인 2023.05.21 2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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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김환식

윤오월

초순인데

모내기 끝난 들판이

야단법석입니다

다잡을 사연들도 없이

윗마을

아랫마을

청개구리들 다 모여 앉아

갑론을박 의견만 분분합니다

더러는

못난 내 흉도 보고

더러는 지들 잘난 체도 하고

또 더러는

가당찮은 입씨름으로

밤 깊은 줄도 잊고 소란을 피웁니다

 

그런 풍광을 추억하며

나는 

좁은 논둑길에 넋 놓고 앉아

생각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아득히

캄캄한 무논만 바라봅니다

 

 

김환식 시집 『생각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황금알》에서

일 년 날씨 중에는 모내기를 시작하고 끝나갈 무렵이 가장 좋다는 생각이다. 지금이야 트랙터로 논을 갈고 로터리를 치기 때문에 목가적(牧歌的) 풍경이 그리 정겹게 느껴지는 것이 덜 하지만, 사람들이 품앗이로 가래질을 하고 소를 몰아 써레질을 하고 모를 내면 다랭이 논 그 높이대로 차곡차곡 쌓여 있는 어둠의 계단에 개구리울음이 별빛을 끌어내리는 것만 같았다. 바로 그러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김환식 시인이다. 「생각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는 개구리울음이 들끓는 전원 풍경의 모습을 시로 옮긴 것이다. 그 소리들 속에는 사람 사는 삶의 이야기보다 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몇 걸음 발자국 소리만 나도 소리를 멈추고 고요에 고요가 깊어야 개구리들은 제 짝을 찾는 구애의 소리를 낸다. 개구리가 우는 것은 구애의 소리라 한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그 개구리들의 울음은 사랑가이고, 이별가이고, 흉이고, 칭찬이고,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게 하는 추억의 일기장이 된다. 요즘 나는 종종 이런 시골길의 논둑을 자주 걷는다. 물론 주위에 아파트도 있고, 4차선 도로에서 달리는 자동차들의 소음이 깔려 있지만, 그래도 치악산의 덕분에 개발의 걸음이 다가서지 못하는 논밭이 있어 복숭아 밭이며, 배밭, 야산의 밑을 휘감고 있는 논들을 따라 난 길을 걸을 수 있다. 우리들 삶의 시간을 조율해주는 마음이 어둠 속에 어둑어둑 흐르는 고요가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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