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원주시청에 짙게 드리운 ‘안나카레니나 효과’
[비로봉에서] 원주시청에 짙게 드리운 ‘안나카레니나 효과’
  • 심규정
  • 승인 2023.05.21 20:42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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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적재적소의 인사,
더 나아가 부서 상하관계의 특성을 고려한 배려인사가 아쉽다.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불행은 쌍으로 온다더니. 최근 원주시청 공무원 2명이 이승과 작별을 고해 공직사회가 가히 초상집 분위기다. 건설도시국 또 다른 여성 공무원도 한 달 전 자살을 기도했으나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이다. 원강수 시장 취임 직후인 지난해 9월 격무에 시달리던 민원담당 공무원이 사망한 이후 거듭되는 자기 파괴적인 우연의 연속에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지역사회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잊힐만 하면 터지는 비보의 원인에 대해 아직 속단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주변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업무 과중에 따른 누적된 스트레스, 우울증, 경직된 조직문화, 여기에 일부 개인사 등이 어우러져 촉발했을 수 있다.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중압감, 고통의 총량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또 다른 살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임종 연구 분야의 개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ubler-Ross)는 고전 「죽음과 죽어감에 대하여」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은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그럴 리가 없다는 ‘부정’, 왜 하필 나인가라는 ‘분노’, 한 번만 기회를 달라는 ‘협상’,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확실해지면 상실과 함께 ‘우울’, 마지막은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고 했다. 감정의 공백기, 즉 절망의 나락에서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옆에 있을 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로 대했더라면, 건의 사항을 좀 더 적극적으로 들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게 공직사회의 분위기다. 삶은 후회를 지워나가는 일의 연속이라 했건만, 돌이킬 수 없는 현실에 후회와 자책이 우리의 가슴을 푹 푹 찌르고 있다. 세상을 등진 동료의 체취는 오간대 없고 흔적만 주변에 어른거린다고. 악운도 이런 지독한 악운을 겪어보지 못했다고 공무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이런 불행의 연속, 공무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것은 결국 원주시의 대책이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에 그쳤음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 9월 격무에 시달리던 공무원이 숨지자, 사안의 심각성을 간파한 시의회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했고, 원주시는 심리치료에 나서는 등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자살(시도) 도미노 현상이 보란 듯이 이어지면서 별무효과에 그쳤음이 드러났다. 원주시는 최근 일련의 자살 사건이 터지자, 또 다시 이러저러 하겠다며 엇비슷한 대책을 내놨다. 더 이상의 사후약방문은 곤란하다. 

인사는 만사(萬事)라고 했지만, 점점 망사(亡事)가 되어가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서글픈 현실이다. 무엇보다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적재적소의 인사, 더 나아가 부서 상하관계의 특성을 고려한 배려인사가 아쉽다. 지금처럼 친소관계에 따른 과감한(?) 발탁인사의 연속, 여기서 촉발된 경직된 조직문화는 어깃장 행정만 노출할 뿐이다. 조직을 뿌리부터 제대로 진단해서 사심을 버리고 진심이 묻어나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습이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이를 두고 안나카레니나 효과라고 한다. 성공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조건들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고, 만약 하나의 조건이라도 충족되지 못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성공은 수많은 실패 요인들을 모두 피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불행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 있기에 약이 되는 길을 선택하라”라고 쇼펜하우어는 권고했다. 또 장 자크 루소는 “불행은 가장 훌륭한 스승이자 수업료가 비싸다”라고 말했다. 지금 원주시청사를 둘러싸고 불행지표가 적금처럼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어떤 재앙의 전주곡 같은 느낌을 지을 수 없다. 물론 기우에 그치길 바랄 뿐이다. 단언컨대 모든 해결책의 시작점은 덜커덩덜커덩거리는 조직시스템의 정상적인 작동에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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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공원 2023-05-27 18:04:48
잘못 뽑아도 엄청나게 잘못 뽑았음

원주시민 2023-05-25 22:07:30
1800여명의 시청 공무원들이 죽을 맛이겠어요.

죄송할 뿐 2023-05-24 08:59:09
무척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죠. 인사가 만사라는 것도, 공직사회의 일도 모든 게 주의 깊게 바라볼 대상입니다. 하지만 밀실행정이니 측근행정이니 킹메이커니 등등 1980년대 군사정부시절도 아니고 부끄럽죠. 이런 상황이면 원주시 공무원들의 근무 행태는 죽을 맛이겠지요. 그러니 평생 일한 직장에서 줄줄이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구요.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사람에게 준 꼴이니까요. 그러니까 막무가내겠지요. 삼성 반도체 등 정책 실패 현상이 분명해지고 인기는 떨어지고 차기 선거 등이 불안하니까, 지역 내 여론 기반이 흔들리니까 더욱 초조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뭐 솔직히 여론 기반은 있었나요? 윤석열 대통령의 후광으로 운이 좋아서 된 거죠. 위세만 떨었겠죠. 애도라도 제대로 하지.

비로봉 2023-05-24 08:54:40
머리가 안되면 공부라도 해라. 계급주의 의식으로 원주시 공무원들을 다루었군. 첨단산업시대의 오타와 같은 존재~~에긍

원주시 2023-05-22 07:28:22
사람 하나 잘못 뽑으면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