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변화의 다른 말은 성장이다.
[살며 사랑하며] 변화의 다른 말은 성장이다.
  • 임길자
  • 승인 2023.06.04 2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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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몇 아이들의
오염된 일탈의 책임은
어른에게 있는 셈이다.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코로나19가 종식되어가면서 요즘 사회복지현장에는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과 일반 사회단체들이 재능기부의 형태로 지원을 늘려가고 있다. 나라 안팎은 어수선하지만 따뜻한 사람들의 온기가 세상을 데우고 있으니 지금의 불편함이 불안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자원봉사(自願奉仕)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도움. 또는 그런 활동”으로 정리하면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동기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이는 봉사 활동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건강한 시각으로 살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사는 모습을 통해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더 깊고 감사하게 깨닫게 된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더불어 사는 일상이라며 자신을 봉사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 어떤 이는 신앙 활동으로 더 높은 영적인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여기며 종교적인 의무감에서 봉사활동을 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아무튼 봉사활동은 나 보다 어려운 누군가를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에너지를 나눔으로서 서로 행복한, 서로 기쁜 일상을 만들고 싶은 착한 욕구의 표현이라고 본다.

오래전 한 중학교에서 협조공문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공문의 제목은 ‘사회봉사 명령 활동 허가 요청’이었다. 내용은 해당 학교 2학년 학생(14세) 셋이서 갓 전학 온 같은 반 친구를 괴롭혀 징계를 받게 되었는데, 벌칙이 ‘사회봉사명령’이었다. 그러니까 그 학생들을 우리 기관에서 사회봉사명령을 수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다. 문득 선입견이 생겼다. 그리고 부담스러웠다. 잠깐도 아니고 하루에 4시간씩 5일을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불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허락했다. 다음날부터 매일 아침 그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은 가해자가 된 상황이라 벌을 받고 있는 중이지만 어쩌면 이 아이들도 피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어떤 형태로든 학교폭력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근절(根絶)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청소년기에 경험한 폭력피해는 평생을 한고 살아가야 할 트라우마가 되기 때문이다.

5일간의 활동 중 한 아이가 내게 말했다. “원장님은 왜 우리들에게 잘해 주시는 겁니까?” 나는 답했다. “나중에 내가 너희들에게 부탁할 일이 있을지도 몰라서... 하하하.” 그 후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 토요일 한 아이가 찾아왔다.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 “저 기억하세요? 사회봉사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왔던 A입니다. 당시 제가 중학교 2학년이었지요. 지금은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방학하면 여기 와서 자원봉사를 하려고요”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철없던 지난 시절이 생각날 때마다 부끄러워 죽겠습니다. 죄송하기도 하고요”

한적한 그늘(소담터)에 앉아서 그와 지난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손가정의 아이였던 그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왜 사회복지를 공부하게 되었는지? 할머니는 어떻게 되셨는지? 앞으로의 설계까지...누구보다도 외롭고 아프게 질풍노도(疾風怒濤)를 경험한 그는 많이 변했다. 자신에게 처해졌던 불편한 과거를 탓하지 않았다. 철없던 시절 자신으로 하여금 불쾌했을 친구에 대한 미안함에 눈이 젖기도 했다. 변화의 다른 말은 성장이다. 지금 이 시대의 아이들은 지금 이 시대 어른들의 작품이다. 그러므로 몇 몇 아이들의 오염된 일탈의 책임은 어른에게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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