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문익환 作 / 손바닥 믿음
[시가 있는 아침] 문익환 作 / 손바닥 믿음
  • 임영석
  • 승인 2023.06.04 2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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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믿음

 

문익환

 

이게 누구 손이지

어두움 속에서 더듬더듬

손이 손을 잡는다

잡히는 손이 잡는 손을 믿는다

잡는 손이 잡히는 손을 믿는다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

인정이 오가며

마음이 마음을 믿는다

깜깜하던 마음들에 이슬 맺히며

내일이 밝아 온다

 

문익환 시집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 《사계절》에서

손을 맞잡고 따뜻한 온기를 느낄 때 그 믿음만큼 아름다운 사랑을 느낀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제 몸을 다 버려야 새로운 희망의 싹을 내밀 수가 있다. 흙이 씨앗을 받아들이고 그 씨앗의 몸을 섞여 싹을 틔우는 일이 어제오늘이 아니건만, 그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의 묘수를 부리지 않는다. 이것이 흙의 진리다. 때문에 씨앗으로 맺힌 것은 그 흙의 진리 앞에 순종을 하는 것이다. 사람의 세상도 서로가 서로를 믿는 마음이 다를 수 없지만, 사람의 세상에서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보다는 개인의 잇속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문익환 선생의 시집을 읽으면서 군사정부 시절에 꿈과 희망을 말할 수 있었던 믿음이 어디에서 흘러나왔는지 생각을 해 보았다. 백기완, 문익환 등의 시민운동가들이 이 땅에 존재했기에 우리가 자유를 말하고 평화를 말하고 통일을 말하는 세상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서로 얼굴 한번 본일 없는 사람들이 대오를 갖추고 손을 맞잡고 걸음을 내밀던 시절, 제복을 입고 길을 가로막던 그 사람들도, 가로막은 길을 뚫고 가려 했던 그 사람들도 이제는 다 60이 넘은 세대들이 되었다. 낯선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걸었던 그때, 그 따뜻한 온기가 이 땅의 민주주의의 씨앗들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눈물 콧물 가리지 않고 흘리며 자유를 갈망하던 사람들보다, 요즘은 그 근처에도 가지 않은 사람들이 더 자유를 부르짖고 있으니, 억압의 상징이던 사람들이 더 자유를 부르짖고 있으니……. 딱히 할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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