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명품 시청로 메타세콰이어길
[비로봉에서] 명품 시청로 메타세콰이어길
  • 심규정
  • 승인 2023.06.11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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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섬강변에 장대한 메타세콰이어가
줄지어 서있다면 어떨까.
지금처럼 수형관리에 애를 쓰지 않아도,
천근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시청로 메타세콰이어길은 나의 최애 가로수길이다. 혁신도시에 있는 집에서 시청 앞 사무실까지 출퇴근 시 주요 경로인 이곳에는 호위병처럼 메타세콰이어가 줄지어 서있다. 사시사철 내뿜는 계절색은 가히 장관이다. “발가벗은 나무와 가지가 근육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라고 한 철학자 헨리 데이비스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말처럼 일제히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봄화장을 하고나서 펼치는 진초록의 파노라마는 도심에서 맛볼 수 없는 진수를 펼쳐보인다. 푹푹 찌는 한여름 숲터널로 분(扮)한 인도는 청량감을 선사한다.

가을이 오면 또 어떤가. 주황색으로 짙게 물들며 색의 향연을 펼쳐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미련 없이 바늘로 뒤덮인 갑옷을 마구 벗어던지고 벌거숭이가 되면 뭔가 달착지근하거나 여러 한약재가 어우러진 것과 같은 향기가 코를 마비시킨다. “이 향기를 저장할 수 있다면 코로 냄새를 수시로 마시고 싶다”라고 생각에 잠기곤한다.

뭐니뭐니해도 눈송이로 치장한 메타세콰이어길 사이에 펼쳐진 저 멀리 치악산의 설경은 한편의 진경 산수화 같은 명장면을 연출한다. 무엇보다 도심의 이산화탄소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거나 분무기로 피톤치드를 마구 뿜어내며 건강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 아마 10년 뒤에는 도로가 메타세콰이어로 뒤덮여 숲터널을 이룰 것이다. 

3억 년 전에 등장했다고 해서 화석나무로 일컫는 메타세콰이어는 병충해에 강하고 1년에 50cm이상 자라는 속성수여서 평균 성장 높이가 아파트 12층 높이(30m)에 이르러 효자수(孝子樹)로도 알려졌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 아쉬움이 남는 대목도 여럿있다. 보도블럭이 들리며 인도가 비스듬히 기울어 지기도 하고 경계석을 차도로 밀어버려 고민거리다. 뿌리가 밑으로 뻗지 않고 지상과 가깝게 뻗어나가는 천근성(淺根性)때문이다. 

괴물처럼 성장하다보니 가지가 이정표와 신호등을 가리거나 자칫 대형차량 통과시 부러진다는 게 인근 주민들의 목격담이다. 이 때문에 나무의 하단 부분을 가지치기한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수관에 파묻혀 있던 이정표와 신호등이 어느날부터 고개를 삐죽 내민 것을 보면 아마도 수형 관리에 애쓴 흔적이 묻어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특유의 피라미드형 수관을 온전히 지켜낼지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임학의 핵심 용어 가운데 ‘적지적수(適地適樹)’란 말이 있다. ‘알맞은 땅에 알맞은 나무를 골라 심음’이라는 뜻이다. 과연 시청로 메타세콰이어는 적지적수에 해당되는 용어일까. 물론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하지만,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결정이라고 본다. 적지적수가 아니라는 얘기다. 시청로 메타세콰이어길은 도심 교통량이 많은 도로 옆 인도에 위치해 있다. 보도블록이나 우레탄이 깔렸다. 

하지만 전국에서 유명한 메타세콰이어길은 사정이 다르다. 전남 담양의 메타세콰이어길, 경북 영덕의 메타세콰이어길, 전북 진안의 부귀 메타세콰이어길, 춘천의 남이섬메타세콰어길은 한적한 공원 또는 교통량이 많지 않은 시골길에 자리하고 있다. 흙길이거나 야자매트가 깔려 있거나 도로 옆이라도 차량 통행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다. 걷기의 매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섬강변에 장대한 메타세콰이어가 줄지어 서있다면 어떨까. 지금처럼 수형 관리에 애를 쓰지 않아도, 천근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나무의 특성을 고려한 적지적수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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