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누구나 좋은 부모를 꿈꾼다.
[살며 사랑하며] 누구나 좋은 부모를 꿈꾼다.
  • 임길자
  • 승인 2023.07.02 2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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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4대가 카페를 방문했다. 할머니는 거동이 몹시 어려웠다. 양쪽에서 할머니의 어깨와 팔을 부축하고 한 사람은 쪼그려 앉은 채로 할머니의 발을 한 걸음씩 옮겼다. 뱃속에 아이를 품고 있는 손녀딸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할머니 뒤를 따랐다. 카페를 들어서며 큰 손자가 말한다. “오늘이 할머니 92번째 생신날이라 가족들이 모여 외식을 했고, 할머니를 모시고 갈 수 있는 카페를 찾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주말만 문을 여는 곳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우리가 지금 대 식구인데다가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이 계셔서 카페에 손님들이 많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왔네요... <중략>”

한꺼번에 10명이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작은 공간이라서 살짝 당황했지만 알아서 두 테이블에 나눠 앉아 주었다. 할머니는 들어 오시자마자 화장실을 들려야 했고, 혼자 앉아있을 수 없으니 의자 세 개를 나란히 붙여놓고 양쪽에는 아들과 손자가 앉았다. 손녀딸이 주문서를 가지고 와서 내게 말한다.

“대 가족인데다가 편찮으신 할머니를 모시고 와서 놀라셨지요?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지도 몰라 사실은 망설였는데 아빠가 여긴 괜찮을 거라 하시더군요. 엄마 아빠도 일흔을 바라보는 노인인데 편찮으신 할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사십니다. 좋은 어른들입니다. 그리고 좋은 부모님이시고요. 아마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좋은 부모였을 겁니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가족은 할머니의 마지막 생신을 합니다. 올해도 잘 모시면 내년에 다시 마지막 생신을 하겠지요?” 라며 불룩 나온 배를 만지던 모습이 생각을 깊어지게 했다.

얼마 전 소금산 출렁다리를 다녀왔다. 주변을 두루 살피며 천천히 두 개의 다리(출렁다리+울렁다리)를 건너는 동안 특별한 가족을 만났다. 거동이 어려운 어머니를 세 명의 아들이 평지는 부축하며 걷고, 오르막 내리막에선 번갈아가며 업고 소금산 길을 걸었다. 노모는 아들의 등에 업힌 채, 앞·뒤에서 걷고 있는 아들들의 안전을 걱정했다. 처음 이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장사익 선생님의 ‘꽃구경’ 노랫말이 생각났다.

함께 걸으며 둘째아들의 입을 통해 사연을 듣게 되었다. “소금산 출렁다리가 처음 생겼을 때만해도 엄마는 걸어서 여길 오르셨지요. 울렁다리가 개통되었다는 말을 듣고 많이 궁금해 하셨는데 이젠 다리가 아파서 엄두가 나질 않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이 마음 낸 겁니다. 우리엄마는 이래도 됩니다. 단풍들면 다시 오려고 합니다. 하하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그들에게선 향기가 났다.

노인복지사업을 하면서 그동안 여러 가정사를 보았다. 부모는 공부를 하거나 훈련받고 만들어지는 자리가 아니라서 숱한 실수를 반복한다. 주어진 역할에서 성공한 부모가 되고자 몸부림치지만 생각처럼 성공의 고지는 그리 녹록치 않다. 자신을 낳아 준 부모를 선택할 수만 있다면 대부분의 어린(철없는) 자식들은 잠깐씩 부모를 바꿀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모 자식은 천륜(天倫)이라고 하늘이 맺어준 관계이다 보니 서로를 미워할 수도, 관계를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처럼 성장해 주지 않는 자식이 미울 수도’ 있고, 자식의 입장에서 ‘기대만큼 도와주지 못하는 부모가 서운할 수도’ 있어서, 더러는 가슴과 머리가 따로따로인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경험한다. 돌아서면 부모도 후회하고, 자식도 후회한다.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수 없이, 틈틈이 자신을 단속해 보지만, 여전히 비슷한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만들어낸다. 성공한 자식들의 등 뒤에는 언제나 좋은 부모가 있었다는 건 진리(眞理)인 듯싶다. 어떤 부모가 좋은 부모일까? 어떤 자식이 좋은 자식일까? 이런 질문과 의문을 가지는 것 자체가 불편한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잠시 숨을 멈추고 생각을 뒤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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