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충전소] 차별의 언어
[지식충전소] 차별의 언어
  • 최광익
  • 승인 2023.07.09 20: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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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인한 상처가
칼로 인한 상처보다
더 깊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최광익 [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장·교육칼럼니스트]
△최광익 [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장·교육칼럼니스트]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말한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참모습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언어는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그 사람의 품격을 나타낸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속담은 언어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무심코 쓰는 언어가 우리 사회 누군가를 차별한다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차별언어의 역사는 길고도 깊다. 오죽하면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의 동기를 말로 고통받는 백성을 위함이라고 했겠는가. 말이 칼이 되어 말이 지나간 자리에 남긴 상처의 고통은 참담하다.

차별언어는 사람들 간의 다양한 차이를 바탕으로 어느 한편을 불평등하게 대우하는 언어 표현이다. 비아냥, 조롱, 멸시, 적대감이 포함된 차별언어, 모든 차별은 바로 언어에서 시작된다. 일상 속의 성차별, 지역차별, 계급차별, 장애인 차별과 관련된 말을 열거하자면 펜에 잉크가 모자랄 지경이다.

외국인 유학생 20만명, 결혼이민자 17만명, 외국인 근로자 45만명을 포함해 국내거주 외국인은 230만명에 이른다. 여기에 3만명이 넘는 탈북주민과 수백명의 난민까지 한국 사회의 구성원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바야흐로 다문화 시대다. 시대변화에 따라 새로운 차별이 등장한 것은 슬픈 일이다. ‘월남 댁’, ‘외국인노동자’, ‘흑형’과 같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외국 이주민을 차별하는 말들이 범람하고 있다.

2018년 출간된 장한업 교수의 <차별의 언어>는 다문화시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화합과 공존을 위해 읽어 볼 만하다. 200 페이지 분량의 책은 먼저 ‘우리’라는 집단의식을 분석한다. ‘우리’는 잠재적으로 ‘우리가 아닌’ 일방을 상정하고 배척한다. ‘우리’가 되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혈연적으로 단일민족이라는 한국인 특유의 생각이다.

한국인은 과연 혈연적으로 단일공동체인가. 저자는 다민족 국가였던 고구려, 이를 계승한 고려, 쌍기와 김충선 같은 귀화 인물 분석을 통해 역사 속 다문화 흔적을 찾아간다. 아울러 700만명에 이르는 재외한국인 존재는 영원한 ‘우리’도, 영원한 이방인도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다문화사회에서 각자의 차이를 존중하는 유럽의 상호문화교육을 소개하며 우리 사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책에 제시된 다양한 언어차별 사례가 가슴 아프다. 베트남에서 3년간 근무했던 필자에게 베트남 학생이 겪은 사례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베트남에서 서울 유명 대학교로 유학 온 여학생은 어릴 때부터 발레를 배웠던 학생이다. 한국에 온 뒤 몸이 굳는 것을 막기 위해 대학교 근처 발레 학원에 등록했단다. 어느 날 발레강사는 이 학생에게 일본에서 왔냐고 물었다고 한다. 베트남에서 왔다고 하자 강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비꼬는 어투로 반문했다고 한다. “아니, 베트남에서도 발레를 가르쳐요?” “한국에 오니까 좋지요?”

우리는, 발레강사처럼, 각자의 제한된 경험과 지식에 터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베트남 하면 전쟁과 가난이 떠올라, 어릴 때부터 발레를 배웠다는 사실이 선뜻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베트남에 대한 무지가 개인적인 수준에서 끝난다면 하등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상처와 모욕감을 주는 언어 사용은 계속해서 또 다른 문제를 만든다. 차별언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국내에서는 이미 언어폭력은 법적 처벌 대상이지만, 외국 이주민에게 필요한 <차별금지법>은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많은 외국인을 만난다. 이들 중 대부분은 잠깐 여행을 왔다가 곧 떠날 사람이 아닌 우리와 함께 살아갈 이웃이다. 한국인과 가족을 이루고, 세금을 내고, 미래를 함께 꿈꾸는 사람들이다. 이들과 차이를 드러내고, 상처를 주는 말은 화합과 공존의 토대를 무너뜨린다. 말로 인한 상처가 칼로 인한 상처보다 더 깊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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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 2023-07-10 09:39:21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 쌍기란 이름을 매우 오랜만에 보네요 우리나라에 과거 제도를 도입시킨 인물로 배웠는데요 베트남 하노이 문묘에 갔었을때 비석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 이름을 쭉 써놓았던걸 본 기억이 나네요 ^^작년 기준 강원도에도 등록외국인이 17384명 그중에 베트남인은 4682명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우리가 베트남 분들을 조금더 잘 이해 할 수 있도록 관련 글들도 나중에 기회 되시면 써 주시면 감사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