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씨 출감하다
김백형
220볼트 플러그를 벽면에 꽂고
이식된 모터심장을 가동시키면
동력은 회전할 뿐 추진되질 않아
철망 안에 프로펠러는
푹푹 찌는 시간만 썰지
삼복교도소 진땀나는 이 수감자 이름은
선 풍 기
돌아도 돌아도 제 자리 걸음,
움찔움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지만
그래도 소용되니 삶이라 하나
정지 될까 회전 될까
수십 번 목 깎여도
자식들 둘러보면 반경만 넓어지고
돌밭 같은 숨소리 고를 새 없이
손끝부터 발끝까지 저려오는
강풍 - 약풍 - 중풍
썰어도 설리지 않는 폭염
뒤척이지 못하는 희망은
퇴물이 되어 출감하는 것
안전망에 갇혀 한평생 동력을 다해왔던
먼지투성이 프로펠러야
베풂도 다하면 폐품이 되는 걸 아니?
오늘은 분리수거 쓰레기 배출일
계간 『창작21-2022년 여름호』,《삶꽃》에서
「풍기씨 출감하다」는 고된 노동의 끝은 버려지는 인간의 고뇌를 그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선풍기라는 대상을 놓고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이지만, 이 대상을 사람으로 비유하면 그 모습이 모두 나 자신이라는 화자로 비추어지는 모습을 지니고 있다. 누구나 사람은 신생아에서 시작하여 노인이라는 삶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끝없는 자기 삶의 반경을 지니고 살아간다. 선풍기도 동력을 이용하여 돌아가지만, 그 동력은 바람만 일으키고 있을 뿐, 앞으로 전진하지 않는다. 애초의 태생이 선풍기이기 때문이다. 선풍기가 출감하다는 의미는 선풍기로써 회전과 정지, 바람을 일으켜 줄 때는 노동의 시간이 있어 버려지지 않지만, 그 노동의 균형을 잃으면 베풂이 다하여 폐품으로 전략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분리수거 일에 폐품으로 버려지면 노동의 긴 감옥에서 벗어나니 출감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 이 시의 결과물이다. 요즘 사람도 사람이 아니라 소요 물이고, 부품이고, 폐품으로 전략하는 순간, 요양병원 등에 고립이 되면 다시는 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고립무원의 세상에 버려진다. 현대 사회의 아찔한 절망감이 고스란히 비추어진 이야기다. 비단 선풍기라는 대상을 놓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우리 모두가 그 화자의 대상이라는 것을 인식할 때 마치 회전의 구름을 다한 베어링 속의 구슬처럼 마모된 몸이 그르렁 그르렁 거리는 소리에 봉착하면 그 큰 기계도 몇 백 톤 프레스도 고철로 헐값에 팔려가는 신세라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아픔이 어찌 우리가 사용하는 가전제품에만 해당할까 싶다. 잘 쓰이던 가전제품이 나라고 생각하면 그 수명이 다하는 순간 쓸모의 시간이 사라지면 세상이라는 감옥에서 출소하는 일만 남아 있는 듯 읽히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