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염창권 作 / 종점 부근
[시가 있는 아침] 염창권 作 / 종점 부근
  • 원주신문
  • 승인 2023.07.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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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 부근

염창권

새벽 발차 직전에 올라 탄 얼굴 몇은

생애의 반쯤은 알고 있는 표정이다

행로의 출발점 지나 걸어갈 길 내비친다

 

쓰레기터엔 끈 풀린 봉지들이 너울대고

인적 드문 빈터 향해 고양이가 다가올 때

겁먹은 낯으로 하루의 프로필을 넘겨보는

 

경계하는 눈빛들을 지울 수는 없는 걸까

주저앉은 길을 끌어 나이테를 감아본다

헛도는 나사못 돌리듯 헐렁해진 해질녘

 

실려 가고 실려 오는 시간 속에 저물어도

관 속 같은 공터에 버스들이 늘어선 밤

바퀴엔 실꾸리처럼 길이 감겨 잠든다.

염창권 시집 『마음의 음력』, 《발견》에서

어느 도시나 버스 종점은 그 도시의 변두리에 있다. 내가 사는 곳에도 늙은 버드나무 몇 그루가 서서 재를 넘어 가려는 몸부림을 치고 있다. 삶의 애환이 가장 깊이 스며 있는 곳이다. 고장 난 버스들은 정비를 위해 기름때 묻은 정비공들이 버스의 깊은 심연의 아픔을 닦아준다. 그런 종점의 풍경을 염창권 시인은 경계를 지울 수 없어 주저앉은 길을 끌어 나이테를 감아본다고 했다. 늘 겉도는 삶의 발자국들이 넘쳐나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종점 주차장에 정차해 있는 버스들은 빈 관처럼 잘 정돈되어 앞뒤 간격이 잘 정돈된 빈 관처럼 놓여 있다고 바라본다. 아마도 이 버스들이 실어 나른 삶의 궤적을 보면 늘 같은 방향의 행선지를 오고 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서로가 얼굴만 보아도 누구는 어디서 내리고 누구는 아침 몇 시에 출발해 저녁 몇 시에 돌아오는 것까지 버스 기사는 꿰뚫고 있을 것이다.  길 위에 놓인 서민의 삶이 어느 실패에 감겨서 어느 대목에 풀고 감는지를 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대중교통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버스 종점을 보면 소시민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처음에는 그 마을 가장 넓은 공터가 종점이었다가 도시가 발전할수록 변두리, 변두리로 터를 옮기며 딸린 자식을 부양하듯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그러니 바퀴엔 실꾸리처럼 길이 감겨 잠드는 모습을 담아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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