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충전소] 표해록(漂海錄)
[지식충전소] 표해록(漂海錄)
  • 최광익
  • 승인 2023.07.30 2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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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함께
세계 3대 중국여행기로 칭송했다.
△최광익 [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장·교육칼럼니스트]
△최광익 [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장·교육칼럼니스트]

표해록(漂海錄)은 ‘바다를 표류한 기록’이다. 조선 성종 때 학자 최부(崔溥)가 1488년 1월 제주도에서 풍랑을 만나 중국 강남(江南)에 표착(漂着)한 후 북경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온 6개월간의 과정을 일기문 형식으로 정리한 중국기행문이다.

최부는 1487년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 도망간 노비를 체포하는 벼슬)에 임명되어 제주로 부임한다. 다음 해 초 부친상 연락을 받고 고향인 나주로 가는 도중 풍랑을 만난다. 14일 동안 표류하면서 해적선을 만나 물건을 빼앗기는 등 곤욕을 치르고 결국 명나라 태주부 임해현(台州府臨海縣)에 도착한다. 일행은 왜구로 오인받아 주민과 관리들로부터 집중적인 조사를 받는다.

왜구 혐의를 벗고 중국 관원들의 호송을 받으며 항주에서 운하를 따라 북경에 이른다. 북경에서 황제를 알현하고 요동반도를 거쳐 압록강을 건너 한양으로 돌아온다. 표류한 인원은 최부의 수행원과 제주현의 관리, 뱃사람을 합하여 모두 43명이었으며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한양에 무사히 도착했다. 조선으로 송환되기까지 태주-영파-소흥-항주-소주-진강-양주-회안-서주-천진-북경-산해관-북녕-요양을 거쳐 한양까지는 무려 148일간의 대장정이었다. 그가 귀국하자 성종은 8,000리 길 중국 땅에서 보고 들은 바를 써서 바치도록 명하였다. 그는 남대문 밖에서 8일간 머무르면서 기술했는데 이것이 <표해록>이다.

<표해록>은 15세기 명대의 소주와 항주 등 강남지역 문화와 제주 사람의 생활상, 조선 항해술, 민간신앙 등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특히 중국 강남(江南)에 대한 상세한 기술은 당시 사대부들에게 큰 화젯거리가 됐다. 중국 강남은 조선 관료들이 다녀온 적이 없는 지역이다. 최부가 그곳의 관료 및 주민들과 대화를 나눈 자세한 기술은 조선 사대부들에게는 그 지역에 대한 갈증을 충족시켜 준 훌륭한 기록이었을 것이다.

최부의 박식함과 자세한 기록 정신은 책 전편에 드러난다. 한 예로 명나라 관리로부터 왜구가 아니고 조선인이라면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써 오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는 단군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조, 도읍, 산천, 인물, 풍속, 제사의식, 호구, 병제 등을 기술했는데, 그의 대답에는 조선 선비의 심오한 지적수준이 엿보인다. 왜구로 몰려 심문을 당하며 관리의 호송 아래 조선으로 돌아오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부는 1454년(단종2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스물아홉 살이 되던 1482년(성종13년) 문과에 급제했다. 벼슬길은 대체로 순조로웠다. 학식과 글재주가 뛰어나 성종의 사랑을 받았고 『동국통감(東國通鑑)』과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편찬에 참여했다.

바다에서 살아남은 최부의 삶은 결국 당쟁으로 희생되었다. 그는 두 차례 사화(士禍)에 연루되어 파탄의 길을 걷는다. 연산군 4년 무오사화에서는 김굉필 등과 붕당을 지어 국정을 비난했다는 죄목으로 장 80대에 함경도 단천으로 유배된다. 연산군 10년 갑자사화로 다시 경남 거제로 유배되고 노비로 삼는다는 처벌이 내렸지만 결국 참형을 당했다.

조선 선비의 시각으로 15세기 중국을 본 이 책은 일찍이 외국에서 주목받았다. 1769년 일본의 유학자 기요다군킨(靑田錦君)이 <당토행정기(唐土行程記)>란 제목으로 번역하였다. 1965년에는 일본에 유학 중이던 미국인 존 메스킬(John Meskill)이 영어로 번역하였다. 1992년에는 중국 북경대학 갈진가(葛振家)교수가 중국어로 번역 출판하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함께 세계 3대 중국여행기로 칭송했다.

우리나라에서의 연구는 미미했다. 1964년 처음 한글 번역본이 나왔고 현재까지 12번째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해가 거듭될수록 <표해록>에 관한 연구와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무더운 여름 조선 선비의 눈으로 본 15세기 중국의 모습 <표해록>의 일독을 권한다.

추천도서: <표해록>, 최부지음/서인범,주성지 옮김/한길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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