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진란 作 / 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
[시가 있는 아침] 진란 作 / 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
  • 원주신문
  • 승인 2023.07.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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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

진란

하루 종일 하늘이 무거웠다

먹구름이 잔뜩 물을 들이켰는지

한낮도 한밤중 같았다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하고

창문을 마구 흔들어 덜그럭거렸다

문이란 문을 죄다 닫아걸었더니

틈을 찾는 바람의 울음이 휘잉 휘이잉

그 안에 내가 있는 것을 안다고

불온한 목소리로 흔들어댔다

들판에 배곯은 승냥이 울음 같은

사랑이 두려웠다

이름을 불러가며 빙빙 도는데

나는 여기 없는 척 숨을 죽이고

악착같은 네 사랑을 믿지 않았다

진란 시집 『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 《시인동네》에서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있는 범위나 거리가 어느 정도일까 생각을 해 본다. 사랑이란 말은 참 용이하게 쓰이는 것 같다. 마음속에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 숨긴 마음까지 사랑이라는 말로 다 포장할 수 있다. 세상이 그렇다. 사랑이란 말을 너무 많이 쓰니, 사랑이 사랑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랑의 진정한 모습을 찾는 일은 사랑을 알아내는 일보다 더 어렵다. 진란 시인의 「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를 읽으면서 사막 한 가운데 놓인 그런 모래알 같은 심정을 느낀다. 사막의 모래알 중 어느 모래알이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숨 쉬는 일을 빼고 나면 사람은 그리 큰 믿음을 간직하고 있지 않다고 보인다. 가족과 피붙이를 제외하면 사랑이란 말속에는 가식적인 말이 너무 크게 담겨있다. 하느님이 정말 있어 사랑을 베풀까. 부처님이 있어 자비를 베풀까. 그저 마음으로 짐작하고 기울어진 마음을 부축받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사랑을 팔아서 사랑을 구걸하는 세상이다. 나를 숨기기 위해 문을 걸어 잠그고 그 문틈으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까지 나를 옥조여 오는 그 막막함은 단절에서 오는 아픔일 것이다. 어딘지 깊은 동굴에 너무 오래 고립되어 시력을 잃은 물고기처럼 살아있는 그 자체로도 힘들지 않겠는가 싶다. 슬픈 거짓말을 만난 적이 있다는 말이 왠지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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