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우려되는 원주시정의 정치화(?)
[비로봉에서] 우려되는 원주시정의 정치화(?)
  • 심규정
  • 승인 2023.08.13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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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되지 않은 과도한 행정력 남용은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기름을 끼얹는 행위로
비칠 수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br>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요즘 아카데미극장 철거 절차를 둘러싸고 빚어진 원주시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눈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거두절미하고 단적인 사례를 보자.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는 지난 8일 오전 원주시가 공무원들을 동원해 아카데미극장 철거의 사전 행위로 각종 기록물을 반출하기 위해 극장 진입을 시도하는 날을 복기해보자. 아카데미의 친구들이 거세게 저항하면서 양측은 부딪혔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출입문 유리창 일부가 부서져 하마터면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물리력에 한계를 느낀 탓일까. 원주시는 본청 방송을 통해 “아카데미극장 앞 대치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각 부서 남자 직원들은 지금 즉시 민방위복 착용 후 아카데미극장 앞으로 이동 부탁드립니다”라고 알렸다. 당연히 공무원들이 추가 투입됐다. 순간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슨 군사작전 펼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과도하게 반응하는지...”라고.

한 팀장은 “공직에 투신한 이후 외부에서 공무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청내 방송을 통해 직원들에게 현장 이동을 요청한 것은 처음 본다”란 반응을 보였다. “원주시를 대표해서 행정을 집행하러 간 공무원들이 있을 테고, 미리 경찰에 알렸으므로 매뉴얼에 따라 통지, 집행 순으로 진행하면 되는 거 아니냐. 나중에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하면 될 일이지, 병력 동원하듯 과유불급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했다.

두 번째는 양측의 충돌 이틀 뒤 원주시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바로 「원주시 일부 시의원, 의회민주주의 망각 행위 유감」이란 제목이다. 현장에서 아카데미 친구들과 함께 공무원들의 극장 진입을 저지하던 시의회 일부 의원들이 “공무를 수행하는 공무원들을 몸으로 막아서고 몸싸움하는 등 정당한 공무집행을 방해하는 일이 발생했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는 원주시의회의 의결행위를 부정하는 행위다“, ”공무를 집행하는 일이 다시 발생하면 고소, 고발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제목부터 내용까지 마치 시민사회단체의 입장문 같았다. 시의원들과 일전불사하겠다는 결기처럼 느껴진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시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시의원들은 정치인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3명의 시의원 가운데 2명은 해당 지역구(중앙동, 원인동, 일산동, 태장1동, 태장2동)시의원이다. 그들은 의회에서 철거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누누이 밝혔다. 따라서 시민들로부터 선택받은 그들은 엄연히 정치 행위를 한 것이다. 원주시가 이처럼 공개적으로 시의원들에게 엄포를 놓은 것을 본 기억이 없다.

두 사례를 접한 순간, 머릿속을 꽉 메운 생각 하나. 바로 ‘행정의 정치화’다. 경기대학교 행정학과 이병량 교수와 아주대학교 행정학과 김서용 교수는 지난 2019년 6월 27일 열린 한국행정학회 하계학술대회에서 「지방관료제의 정치화」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언급했다. 지방행정의 정치화 추세에 따라 행정적 자치단체장보다 정치적 자치단체장의 행태가, 공무원들도 행정적 판단보다 정치적 판단 사이에서 고민할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객관적・전문직업적・양심적 판단과 사고의 중단 및 정치적 충성에 의한 관리 현상이 ‘영혼 없는 공무원’과 ‘줄서기’의 형태로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라고 밝혔다. 내년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아카데미극장 철거를 둘러싼 찬반 대립은 이미 메가 이슈로 부상했다. 원주시와 시민들이 마치 브레이크가 파열된 채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의 질주 같은 형국. 갈 길이 태산준령인데 매사 갈등과 대립으로 시민들에게 비치는 것은 유감이다. 절제되지 않은 과도한 행정력 남용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역효과가 날 수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공직사회는 냉정해야 하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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