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시향 作 / 지네
[시가 있는 아침] 이시향 作 / 지네
  • 원주신문
  • 승인 2023.08.1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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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네(이시향)

저 많은

장갑 끼다

하루가

다 갔어요.

저 많은

신발 신다

하루가

다 갔어요

-《한국동시문학》2018년

계간 『주변인과문학』2020년 겨울호에서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이시향 시인의 동시 「지네」를 읽으면서 뱀은 어떤 신발을 신는지, 나비는 또 어떤 신발을 신는지, 별은, 구름은, 바람은 등등 많은 것들이 걸어 다니고 옮겨 다니는 모습이 떠오른다. 신발은 당연히 사람이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는 것이다. 요즘이야 반려동물들에게 신발을 신기는 경우를 종종 보지만, 동물이나 곤충은 신발 그 자체를 신지 않는다. 마음속에 신발을 신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지네는 발이 많은 곤충이다. 그러니 손과 발이 많다는 생각에서 이런 동시가 쓰였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의 모습을 비유해도 크게 모자람이 없다. 나라가 되었건 작은 동네가 되었건 몸 덩어리는 하나다. 그러나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과 눈, 그리고 손과 발의 생각은 다양하다. 그러니 그 많은 사람의 생각의 옷이 각양각색으로 시끄럽고 분분하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지네의 발처럼 한뜻으로 뭉쳐 걸어가지 못한다. 다수결의 원칙이 있지만, 이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정확하지 않은 논리를 들이대고 떼를 쓰고 내 생각만 옳다고 하는 세상이다. 하루 종일 지네처럼 생각의 장갑을 끼고, 하루 종일 생각의 신발을 신다 보니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한다. 요즘 세상이 꼭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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