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돌봄서비스 종사자들에 대한 불편한 진실
[살며 사랑하며] 돌봄서비스 종사자들에 대한 불편한 진실
  • 임길자
  • 승인 2023.09.03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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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조성한 기울어진 운동장 모서리에서
돌봄서비스 종사자들은 오늘도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고 있다.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도향 임길자 [문막노인복지시설 정토마을 원장]

94세 노모를 모시고 살던 아들이 찾아왔다. 일흔을 넘긴 그도 노인인지라 머리는 백발이 성성했다. “어머님을 끝까지 돌봐 드려야 하는데 아내가 많이 아픕니다. 아내를 병원에 입원을 시켜야 하는데 어머님을 혼자 집에 둘 수가 없어서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시설 입소 한달 쯤 지났을 무렵, 50대 정도로 보이는 한 남자가 찾아왔다. ◯◯님 둘째 아들이라면서 어머님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그는 이미 낮술에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어 이성적 대화가 불가능했다. 나는 경찰을 불러놓고 주보호자(장남)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그 사이 술 취한 남자는 경찰관이 끌고 갔고, 잠시 후 어머님의 주보호자(아들)가 시설에 도착했다. “그 사람은 저의 막내 동생입니다. 날마다 술로 사는 사람이지요. 우리 집에 찾아와 엄마를 보고 싶어 하길래 여기 시설을 알려줬어요. 설마 했는데 또 이렇게 사고를 쳤군요. 어머니를 여기 그냥 모시면 같은 일이 반복될 겁니다. 미안합니다”라며 어머니를 모셔갔다.

최근 요양보호사들에게 흉기난동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서 마음이 뒤숭숭하다. 얼마 전 인천에서는 자신을 돌봐주던 요양보호사를 흉기로 상처를 낸 70대 남성이 경찰에 긴급체포 되었다. 경상남도 한 요양병원에서는 치매어르신이 요양보호사를 흉기로 찌른 뒤 자해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 면회를 갔다가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흉기를 들고 찾아가 요양보호사를 위협한 60대 남성이 재판에 넘겨졌다.

동두천에서는 80대 치매 어르신이 요양보호사에게 흉기를 휘둘러 특수상해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그는 요양보호사에게 엘리베이터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요구했으나 여의치 않자,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요양시설은 입소자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모든 출입문은 물론 엘리베이터에도 시건장치를 하도록 장기요양사업법에 명시되어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의하면, 올해 2월 말 기준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자 수는 전체 252만 8,140명으로 파악됐다. 연령별로 보면 20대 이하 1만 6,461명, 30대 9만 6,935명, 40대 36만 9,943명, 50대 85만 9,494명, 60대 93만 2,275명, 70대 이상 25만 3,032명으로 나타났다. 

이 중 현재 요양보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은 전체의 24%(60만 9,221명)에 불과했다.  60대 30만 7,923명(33.03%), 70대 이상 7만 4,923명(29.62%), 50대 18만 4,923명(21.52%),  40대 3만 5,853명(9.69%), 20대 이하 999명(6.07%), 30대 4,579명(4.72%) 순이었다. 60대 이상 요양보호사가 63%를 차지해 돌봄서비스 현장도 점점 고령화 되고 있는 것이다. 자격증을 소지한 젊은 층이 현장을 기피하는 이유에 대해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이 깊어진다.

치매 어르신의 이상행동은 예측이 곤란할 때가 종종 있다. 현장에서는 어르신들이 직원들에게 가하는 언어적.신체적 폭력 또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어르신을 모시는 과정에서 얼굴을 맞고, 손과 팔을 물리고, 기저귀를 교체하거나 목욕서비스 제공시 직원을 발로 차 골절상을 입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사건들처럼 서비스 종사자들은 맨몸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인권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최소한의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일 경우에 인권은 공정하지 않다. 사회가 조성한 기울어진 운동장 모서리에서 돌봄서비스 종사자들은 오늘도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고 있다.

시설 종사자들 대부분은 자신이 지금 만나고 있는 어르신의 모습이 훗날 자기 얼굴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수시로 시설물 점검은 물론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개발하여 어르신의 욕구에 맞추고자 애를 쓴다. 그래서 시설에 머물러 계시는 어르신 자신이 살아 있음이 다행스러워지도록 온 마음을 다 한다. AI가 세상을 움직이는 환경에서도 어르신의 몸과 마음을 직접 살피는 일은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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