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영웅을 둘러싼 불썽사나운 딸꾹질
[비로봉에서] 영웅을 둘러싼 불썽사나운 딸꾹질
  • 심규정
  • 승인 2023.09.10 20: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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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br>
△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독립운동사의 대명사’ 홍범도 장군에 대한 재평가 논란이 요란하다.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중앙현관 앞에 있는 장군의 흉상을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 것이다. 소련 공산당 가입 전력이 이유다. 흉상 이전을 추진하는 측은 그의 공산당 입당 전력이 육군사관학교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며 연일 공세를 퍼붓고 있다. 물론 그의 독립운동 업적은 평가한다면서도 말이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홍범도 장군이 공산당에 가입할 당시는 미국과 소련이 연대해 일본을 주적으로 삼았던 격동기였다. 우리나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사정이 이러니 ‘장군에 대한 패륜’, ‘부관참시’라는 반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독립운동사의 로망’ 홍범도 장군에 대한 공산주의자 낙인찍기는 외눈박이식 역사관이다.  

홍범도 장군이 영웅으로 평가받기까지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인과관계를 이렇게 표피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역사란 조각난 사실들의 집합이다. 쳇바퀴 돌 듯 되풀이되면서 집단의 기억이 된다. 지금 논란을 보면 마치 얼굴에 점하나 박혔다고 추남으로 보듯, 전체보다는 일부만 보고 가혹하게 무 자르듯 재단하고 있다. 그의 기념비적인 독립운동사가 부정적 이미지로 덧씌워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극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E.H.카는 자신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의 연구는 원인에 대한 연구다”라고 했다. 이 말을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에 투영해 보면 그는 왜, 무엇을 위해 그렇게 했는가?로 귀결된다. 일제 강점기는 우리 역사의 지뢰밭, 역사의 늪지대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인사들의 처신 논란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동안 그 굴레에서 우리는 얼마나 허우적댔던가.

결국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은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독립 운동을 위해 감행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위기는 필연적으로 변화를 초래한다. 그래서 역사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했다. 당시 시대상황에서, 이역만리에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국가 정체성 바로 세우기. 참 좋은 말이다.

하필 그 대상이 ‘민족의 영웅’ 홍범도 장군이란 말인가. 곡절 많은 역사적 사건 속에서 결과에 대한 진정한 동기는 도외시한 채 그의 스펙터클한 독립운동사가 폄훼되는 것은 유감이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지만, 역사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도 미래는 없다고 했다.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라는 오염수로 세탁하는 역사적 범죄는 당장 멈춰야 한다. 역사적 사실 규명은 학자들의 몫이다. 

지금 나라 안팎이 풍전등화의 위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라 각종 원자잿값 상승으로 건설경기가 크게 위축됐다. 나라 곳간 사정은 최악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방류에 따른 수산시장 직격탄, 러시아·중국·북한의 연합 군사훈련 등등. 철 지난 이념논쟁에 날밤 세울 정도로 우리의 처지는 한가하지 않다. 과거의 손아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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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sskim 2023-09-10 23:55:43
좋은 견해, 유익 있게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든 공과 사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