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정옥자 作 / 새와 한 밥상에
[시가 있는 아침] 정옥자 作 / 새와 한 밥상에
  • 원주신문
  • 승인 2023.09.10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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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한 밥상에

-산중일기· 2

정옥자

 

새가 반을 먹고 간 사과의 반을 내가 먹는다

반반씩 나눠 먹으니

새와 한 밥상에 앉은 기분

 

어린 딸과 밥을 먹는 것은

어린 새와 한 밥상에 앉는 것

 

하늘도 한 쪽씩 같이 품는 것이다

정옥자 시집 『연못의 뒷문』,《시와소금》수록작

〈시집 속의 좋은 시 한 편〉 소개 시

계간 『시와소금』 2022년 가을호에서

농사를 짓다 보면 실하고 잘 익은 것은 새들이 먼저와 먹는다. 그것도 볕 잘 들고 사람 손이 가지 않는 나무 꼭대기에 있는 것만 골라서 먹는다. 정옥자 시인은 그러한 사과를 버릴 수 없어 반 남은 사과를 새와 함께 나누어 먹는다고 했다. 반반씩 나눠 먹으니 새와 한 밥상에 앉은 기분이라 했다. 참으로 아량이 넓고 포근한 마음을 지녔다는 생각을 한다. 콩을 심을 때도 한 알을 심지 않는다. 두세 알을 심는다. 새들이 쪼아 먹을 것을 대비하여 그리 심는다. 농사꾼이라면 동물이나 새들이 와 먹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농사를 짓는다. 그 마음은 어린 딸과 밥을 먹는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생각을 한다. 이 세상 나 혼자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숲에 가 나무들을 보아도 쉽게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계곡의 바위틈에 붙어 사는 바위손이며 이끼 칡넝쿨, 담쟁이 등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나무들은 새들에게 항상 제 가지의 품을 내어주어 새들이 와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게 품을 내준다. 이 세상이 그리 살게 되어 있다. 먹이 사슬로 얽혀 있는 구조이지만, 그 구조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 하늘 아래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결국 한 밥상 위에 살아가는 식구인 셈이고, 가족인 것이다. 물도 바람도 꽃도 나무도 하늘이 차려주는 밥상 위에서 모두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하면 행복은 차고 넘칠 것이다. 그 차고 넘치는 행복을 산중에 살며 느끼는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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