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충전소] 밥은 먹고 다니냐?
[지식충전소] 밥은 먹고 다니냐?
  • 최광익
  • 승인 2023.10.05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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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급식 종사자의 고뇌와 수고도 알아야 한다.
△최광익 [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장·교육칼럼니스트]
△최광익 [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장·교육칼럼니스트]

밥은 먹고 다니냐? 이 질문은 진심으로 상대방의 끼니를 걱정하고 건강을 염려하는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의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은 밥과 노동, 사람과 세상을 이야기한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인간의 노동에 대한 성찰을 통해 밥이 자본을 만나면 괴물이 되는 행태를 고발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밥은 먹고 다니냐고 제대로 물어주는 사람이 필요한 세상을 이야기한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곡식을 키우고, 식재료를 다듬고, 식단을 짜고, 요리하고, 설거지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우리 미래 밥의 질은 농촌의 실상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농민은 200만 명 정도이고 평균나이는 70세이다. 부모의 농업을 이어서 계속하겠다는 ‘승계농’의 숫자는 8천 명 정도다. 이는 10년 후 5천만 국민이 8천 명의 농부에게 매끼 매달려야 한다는 의미다. 기후변화로 풀을 한 번 이상 더 깎아야 할 정도로 농촌의 노동 여건은 더욱 가혹해지고 있다.

부자가 되면 하기 싫은 일이 생긴다. 부자가 된 대한민국은 모두가 힘든 일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배 타는 일, 양식업, 축산업, 농업 순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일을 떠맡았다. 이들이 없으면 농촌은 더 빨리 소멸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일할 때는 이들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다가 일이 끝나면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실상이다. 이들이 어디서 잠을 자는지, 무엇을 먹는지, 몸은 건강한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결혼이주여성들이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농촌을 지키며 아이를 낳고 마을학교에 보내지만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사회적 인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면 귀농 귀촌이 농촌을 활성화 시킬까. 어림없는 생각이다.

한 팩의 고기에는 기르는 사람, 잡는 사람, 포장하는 사람, 배달하는 사람이 있다. 식사는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신체와 영혼의 칼로리를 채우는 일인데, 이들은 과연 제대로 된 식사를 할까. 저자는 냉동물류센터의 대형화재와 로켓배송 쿠팡맨의 과로사를 통해 서로의 안녕을 묻는 사회이기를 소망한다.

우리 아이들의 밥은 어떨까. 상시결식아동 68만 명, 그 중에서도 방학 중 결식아동은 41만명,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물론 이들에게 결식지원카드가 제공되지만, 이들의 한 끼는 고작 4-5천원으로 동네 편의점에서 해결하기 일쑤다. 세끼를 챙겨 먹는 대학생들은 거의 없다. 다이어트나 생활패턴의 변화를 이유로 들기도 하지만 실상은 학교는 멀고 돈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은 한 끼를 삼각김밥, 컵라면, 바나나맛 우유로 편의점에서 해결한다. 그곳은 눈치가 안 보여서 ‘혼밥’하기 좋은 곳이다.

황혼이라고 밥상이 넉넉할 리 없다. 한국에는 650만 명의 노인이 있고, 그중 절반 이상이 중위소득에 못 미치는 빈곤상태이다. 한 끼를 위해 노구를 움직이며 새벽부터 길거리를 헤매는 노인들은 2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한 달 폐지를 주워도 채 10만 원을 손에 넣지 못한다. 이들은 스산하기 그지없는 밥상을 혼자 하거나 경로당에서 해결하기도 한다.

지난 1998년부터 학교급식이 시작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위탁에서 직영으로, 그리고 친환경 무상 급식 단계로 20년간 계속되었다. 차별없이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점심 한 끼를 먹여야 한다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의지의 결과다. 이제는 단순히 한 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채식선택권과 같은 급식선택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학교급식 종사자의 고뇌와 수고도 알아야 한다. 우리 아이의 끼니를 책임지는 전문가들은 비닐 앞치마와 장화, 위생모와 마스크, 팔 토시를 하고 한증막과 같은 급식실에서 바람 한점 들어오지 않는 복장으로 밥을 하고 국을 끓여 내 아이의 밥을 챙겨준다. 입학식과 졸업식에서 지역정치인과 동창회장에 앞서 인사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얼마 전 저자를 독서모임에서 만났다. 토마토 농사를 했던 농가에서 자라고 농촌사회를 연구하는 그녀가 말했다: “치킨 배달 청년의 물건을 두 손으로 받고,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하는 사회를 꿈꿉니다.” 마주하는 밥상 너머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의 안녕을 진심으로 묻는 말, ‘밥은 먹고 다니냐?’,이 말이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사회를 바라는 것은 그녀만이 아닐 것이다.

추천도서: 정은정(2021).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한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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