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서화 作 / 땅콩의 방
[시가 있는 아침] 이서화 作 / 땅콩의 방
  • 원주신문
  • 승인 2023.09.1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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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의 방

이서화

 

땅속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허리띠 바짝 졸라맨 방

포기를 뽑으면 많은 방이 줄줄이 올라온다

예를 들자면 다가구 주택들이고

타원형 방과 방 사이엔

건너다닌 적 없어 훌쭉하다

 

방 두 개를 얻어 사는데도

이렇게 허리띠 졸라매야 한다면

그건 방과 방 사이가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모든 씨앗이 독채로 봄을 맞고

줄줄이 일가를 이루는

세상 모든 방이 다 이렇다면

날콩으로 비릿하다가

점점 고소해지는 것이라면

기껏, 껍질 속에서 더부살이로 지내다 가는

독방의 날들도 견딜 만하다

또 견딘다는 것

볕이 들지 않는 방에서

봄을 기다리듯

 

누가 옆방에서 똑똑 나를 두드린다

이서화 시집 『날씨 하나를 샀다』,《여우난골》에서

요즘 집들이 문제다. 수도권의 집은 물론 중소도시의 집값이 젊은이들이 취직해 집을 산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지고 있다. 물론 여러 주거환경이 고려되어 있겠지만 평범한 직장인들이 집을 장만하는 데는 보통 20여 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것도 공기업에 취직을 한 철밥통들이란다. 그러나 소비지출을 기준으로 생활비에서 남는 금액을 순수하게 저축해 사려면 95년이란 시간이 걸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렇게 집은 소요의 대상이고 집착의 대상이 되어 있다. 이서화 시집 『날씨 하나를 샀다』를 읽으면서 그중 「땅콩의 방」에 눈이 멈췄다. 사회적 이슈 때문이랄까, 아니면 잠재적인 의식이 공유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서화 시인은 영월 출생으로 원주에서 살고 있다. 시인이란 일가를 이루고 사는 게 무엇인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자기 영역의 방을 만들어 사는 게 무엇인지 땅콩의 방을 통해 잘 이해시키고 있다. 땅콩이라는 비유적 식물을 예로 들며 방이 지닌 의미를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사람 세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무리 많은 아파트를 짓고 아무리 많은 옷을 만들어도 내 것은 단 하나면 족한 것이 집이고 옷이다. 바둑을 두는 것을 보면 몇 수의 앞을 보며 두지 않고 두면 집을 지을 수가 없다. 바둑에서 집을 짓지 못한다는 건 죽음을 의미한다. 두 개 이상의 방을 만들어야 하는 바둑의 집은 견고한 집착력을 갖고 있다. 땅콩의 방도 그런 삶의 집착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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