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장석주 作 / 대추 한 알
[시가 있는 아침] 장석주 作 / 대추 한 알
  • 원주신문
  • 승인 2023.09.2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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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 한 알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장석주 시집 『붉디 불은 호랑이』,《애지 2005》에서

시하늘 2009 겨울호 독자가 뽑은 좋은시에서

[사진=이미지투데이 제공]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 은 광화문에 내걸리면서 국민적인 시가 되었다. 대추 한 알만 익혀내기 위해 대추나무의 대추가 열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추 한 알은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다. 대추 한 알, 쌀 한 톨처럼 대비되는 과장이 사람의 심리적 느낌을 더 호소력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대추 한 알이 주지시키는 시적 힘은, 봄부터 가을까지 쉬지 않고 자연과 맞서 싸우며 제 할 일을 묵묵히 해낸 대추나무의 노력을 말하고자 함이다. 대기만성의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겨낼 수 없다는 교훈을 갖게 한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시조를 거론하지 않아도 좋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란 속담을 들추어 내지 않아도 좋다. 대추 한 알 익혀내기 위해 비바람 내렸던 날을 가슴에 다 간직했고, 무서리며 땡볕까지 이겨내야 대추 한 알이 익는다. 사람의 입에서 말이 나오려면 수만은 반복의 말을 듣고 익혀야 말이 나온다.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수없이 넘어져야 일어나는 법을 익힌다. 대추 한 알도 우리들 삶의 걸음을 대추 한 알 속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 인내심을 대추 한 알에 담아 놓은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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