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달빛 향기 속에서
[기고] 달빛 향기 속에서
  • 김장기
  • 승인 2023.09.24 21:1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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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밤늦도록 마룻바닥에 모여 앉아서
깔깔거리며 정겨움을 나누는 모습이
추석 시즌의 백미(白眉)였다.
△김장기 [지식인연대 강원도부위원장·행정학 박사]
△김장기 [지식인연대 강원도부위원장·행정학 박사]

명절 때가 되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그만큼 좋은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고 정감 있게 남아 있다. 가끔 유년 시절을 돌아보곤 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보름달이 휘황찬란하게 뜬 추석이었다. 어릴 때는 둥근 보름달을 보면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나는 듯했다.

내 안에 둥지를 튼 추석은 짙은 향수와도 같은 고소함이었다. 맛있게 구운 고기를 찍어 먹는 소금장의 고소한 향기, 매년 한 번씩 맛볼 수 있는 각인된 달빛 향기였다. 어릴 때부터 잠재의식 속에 곱게 새겨진 추석 풍경이다.

추석날은 여자보다는 남자들이 흥겨웠다. 우리 집은 몇 대째 장손 집안이라서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서울과 지방에 흩어져 살던 윗세대와 아랫세대가 다 함께 모여 연례행사처럼 추석 시즌을 보냈다. 추석날은 그리운 가족을 만나고, 함께 어울려 애틋한 정감을 나누었다. 이때 모인 가족 구성원의 숫자는 상당했다.

요즘과는 달리, 한때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은 축복이었다. 오복(五福) 중의 하나가 다산(多産)이었다. 이런 의식은 대가족제도를 유행시켰다. 윗세대인 작은아버지와 고모들이 객지에서 생활하다가 귀향하던 날이 추석 시즌이었고 대목이었다. 서울에서 고향을 찾아오던 가족들을 배웅하려고 시골 간이버스 정류장과 장터에는 몇 시간씩 가족들을 기다리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래서인지 설날보다는 추석이 훨씬 정겨웠다. 한가위가 갖는 계절 속의 풍요로움을 마음껏 즐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내 마음과도 같았는지, 유명한 시인 중에는 추석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추석과 관련된 시 중에는 최병엽 시인의 〈송편〉, 황금찬 시인의 〈추석날 아침에〉, 서정주 시인의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라는 시가 감흥이 남달랐다. 한가위의 둥근 보름달을 찬미하는 신비로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계절 속의 풍요로움을 노래했다. 우선 최병엽 시인의 〈송편〉이라는 시(詩)다.

보송보송한 쌀가루로/ 하얀 달을 빚는다/ 한가위 보름달을 빚는다.

추석 시즌에 먹던 쫄깃쫄깃한 송편 맛, 솔잎 향기를 머금고 가마솥 군불에서 하얗게 떡 익는 소리를 듣는 듯했다. 잘 익은 송편 위로 참기름을 살짝 바르면, 노란 달덩이처럼 고운 빛깔이 입맛을 다졌다. 또 다른 시편은 크리스천투데이에 기재했던 황금찬 시인의 〈추석날 아침에〉라는 시(詩)다. 여기에서 시인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어린 시절에 송편을 나누어 먹던 이웃사랑을 그려냈다. 어머니는 송편을 빚고 가을이라는 풍요로운 꽃잎을 쟁반그릇에 담아서 이웃들과 나누었다.

어머님은 송편을 빚고/ 가을을 그릇에 담아/ 이웃과 동네에 꽃잎으로 돌리셨지.

추석은 이웃들과도 함께 나누며 어울렸다. 다음은 여성소비자신문에서 기재했던 서정주 시인의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라는 시(詩)다. 우리나라 서정시인의 대가답게, 시 안에는 가족이라는 기막힌 이름을 넣어 놓았다. 휘영청 밝은 달과 잘 어울리는 것은 정겨운 가족이다. 추석 전날 밤에 가족들은 마루에 모여 앉아 송편을 빚었다. 밝은 보름달이 떠오르니 뒷산 노루도 흥겨웠다.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 오고/ 뒷산에는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달빛 향기는 가족이었다. 가족들이 밤늦도록 마룻바닥에 모여 앉아서 깔깔거리며 정겨움을 나누는 모습이 추석 시즌의 백미(白眉)였다. 지금은 예전과는 달리, 추석날 가족들이 기껏 모여야 너댓 명이다. 그래도 가족들이 함께 모여 앉아서 송편을 빚거나 그리움을 나눈다. 지금도 추석이 되면 가족들이 함께 모여 앉아서 정감을 나누는 고소한 달빛 향기를 맡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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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구시민 2023-09-26 08:02:22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해피 추석~~

원주시민 2023-09-25 08:03:00
칼럼과 수필, 시를 자유자재로~~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