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충전소] 지명(地名) 이야기
[지식충전소] 지명(地名) 이야기
  • 최광익
  • 승인 2023.10.10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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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은 우리와 서로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바탕이 한자인데,
한자와 점점 멀어져가는 세태가 아쉽다.
△최광익 [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장·교육칼럼니스트]
△최광익 [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장·교육칼럼니스트]

요즘은 학교에서 한문이 필수교과가 아니어서 젊은 세대들은 한자로 된 말의 정확한 뜻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상황은 다른 나라도 비슷한데, 같은 한자문화권이었던 베트남은 아예 문자를 알파벳으로 바꾸어 버렸다. 일본의 한자 사용은 우리와 다른 점이 많고, 중국은 간체자(簡體字) 사용으로 옛날 함께 쓰던 한자로 소통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은 천년이상 한자를 함께 사용한 경험이 있어 한자를 매개로 한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다. 젊은 세대가 한자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3년간 베트남에 근무하면서 지역 이름이 모두 한자로 되어 있다는데 놀랐다. 우리가 사용했던 ‘안남(安南)’은 당나라가 베트남을 정복하고 통치를 위해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설치하면서 비롯된 이름이다. ‘월남(越南)’이란 말은 만들어진 배경이 재미있다. 베트남 마지막 왕조를 세운 자롱황제가 1802년 청나라에 국호를 ‘남월(南越)’로 하겠다면 허가를 청하자, 청나라는 과거 남월(南越)지역이 베트남 뿐만아니라 광동성, 복건성 등 중국 땅을 포함하여 혹시 나중에 이 지역도 자기 땅이라고 할 우려에서 글자를 살짝 바꾸어 허가했다.

우리나라 인천과 같은 하이퐁(海防)은 ‘바다로부터 막아 준다’는 의미이고, 관광지로 유명한 푸꾸억(富國)은 ‘부자나라’, 호이안(會安)은 ‘평화로운 만남의 장소’라서 주변국 상인들이 안심하고 모이던 무역항이었다. 하롱베이(下龍灣)는 ‘용이 내려온 곳’이고, 하노이의 옛 이름 ‘탕롱(昇龍)’은 용이 승천한 곳이다. 베트남 경제수도 호치민시는 통일 전에는 ‘사이공(西貢)’이라 불렸는데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서쪽 도시’라는 뜻이다.

중국의 지명은 강(江), 산(山), 호수(湖)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보통 중국에서 ‘강’은 장강(長江) ‘하(河)’는 황하(黃河)를 의미한다. 장강을 중심으로 강남(江南)과 강북(江北)으로 나누어진다. 하남성(河南성)은 황하(黃河)의 남쪽, 하북성(河北省)은 북쪽 지역을 부르는 이름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산동성(山東省)은 태행산(太行山)을 중심으로 동쪽 지역이고 산서성(山西省)은 서쪽 지역이다. 중국 한복판에 동정호(洞庭湖)라는 큰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를 중심으로 남쪽은 호남성(湖南성)과 북쪽은 호북성(湖北省)이다.

일본은 홋카이도(北海島), 혼슈(本州), 시코쿠(四国), 규슈(九州) 등 네 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홋카이도(北海島)는 북쪽 바다에 있는 섬이고, 혼슈(本州)는 일본 인구의 80%가 사는 가장 큰 섬이다. 시코쿠(四国)는 네 나라, 규슈(九州)는 9개 나라가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서 명칭이 유래했다. 나고야는 한자로 ‘名古屋’이라 하지만 ‘中京’이라고도 하는데 도쿄(東京)와 교토(京都)의 중간이라는 뜻이다.

나라의 수도였던 곳에 ‘京(서울 경)’자를 붙이는 것은 네 나라 공통이다. 서울을 한 때 경성(京城)이라 했고, 일본의 도쿄(東京)와 교토(京都)는 현재와 과거 일본의 서울이다. 중국에는 서울이 세 개 있는데, 북쪽은 빼이징(北京), 남쪽에는 난징(南京)이 있고, 서쪽의 수도는 서경(西京)이라 하지 않고 시안(西安)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가장 큰 도시인 중경(重慶)은 ‘서울’이란 뜻이 아니라 ‘경사가 겹친 곳’이란 뜻으로, 특별한 역사적 사실에서 유래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河內)는 ‘강 안쪽의 도시’란 의미이지만, 한때 동경(東京)으로 불렸고, 베트남전쟁의 시작점인 ‘통킹만 사태’도 ‘동경’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중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이다. 베트남은, ‘경기도 다낭시’, ‘사돈의 나라’라는 말에서 보듯, 우리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과 서로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바탕이 한자인데, 한자와 점점 멀어져가는 세태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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