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벼락 손창기
기우뚱하고 얼룩진 그분의 등은 따뜻하다
햇살로 등멱을 한 그 곳에 기대어
마지막 밭농사, 들깨가 말라가고 있다
거칠거칠한 줄기에 긁혀도 다 받아들이는 그분을
손끝으로 쓰다듬으면 들깨 향내가 묻어온다
겉은 미끈하지만 속은 움푹 패인 그분은
외양간 소도 한 식구로 여기는 마음을 가져
비벼댈 때마다 근질근질한 시름을 털어내기도 한다
녹이 앉은 대문을 어깨에 매달고도
겨드랑이에 붉은 땀으로 감추고
다독여 주곤 하는 것이다
그분은 제 몸이 쩍쩍 갈라져도
말라가는 줄기 속으로, 호박들 잘 익어가라고
햇살들 뿜어 올리면서 상처를 돌보지 않는다
벌거벗은 그분의 들줄기에다
등 대면 구들장을 지지는 것처럼 뜨끈뜨근해진다
2005년 포항문학 “특집시”[통권25호]에서
손창기 시인의 ⌜담벼락⌟ 은 따뜻한 볕이 내리쬐는 가을날의 풍경을 옮겨 놓은 시다. 담벼락을 중심으로 사람 삶의 일들을 오고 가는 연극 무대 같다는 생각을 하면 이 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분이라 함은 담벼락을 의인화 한 것이다. 담벼락이 그분으로 부른다는 것은 오랜 세월을 안과 밖이라는 구분은 물론 사람 삶의 절대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햇살이며 붉은 고추, 외양간의 소 등은 담벼락이란 무대를 더 돋보이려고 등장시킨 대상들이다. 결국 그분 담벼락은 홀로 말라가고 무너져 가고 뜨거운 구들장처럼 햇볕이 덥혀져 있다. 이 담벼락에 담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은 향수라는 마음일 것이다. 잊지 않고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 담벼락이란 풍경을 시로 그리게 만들었다고 본다. 이제 담을 쌓고 살아가는 풍경들도 많이 사라졌다. 이 시도 2005년에 발표되었으니 그때와 지금의 시각적 모습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도 마음으로 읽는 삶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 아름다운 담벼락에 대한 추억과 애정의 모습이 이 시의 가장 큰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