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충전소] 선현들의 책 제목
[지식충전소] 선현들의 책 제목
  • 최광익
  • 승인 2023.10.22 2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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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인정한 귀중한 유산을
후손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무관심으로 방치하는 것은 도리가 아닐 것이다.

△최광익 [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장·교육칼럼니스트]
△최광익 [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장·교육칼럼니스트]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다.” 1866년 병인양요로 강화도를 침공해던 프랑스 해군 장교 주베르의 말이다. “조선인은 책을 좋아한다. 조선 사신들은 옛 책 새 책 가리지 않고 조선에 없는 것들은 비싼 값을 아끼지 않고 책을 사 간다” 명나라 문인 강소서(姜紹書)의 책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 민족은 기록의 민족이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같은 국가 편찬물부터 개인의 일기나 문집에 이르기까지 글을 좀 읽는다는 사람치고 자신의 글을 남기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문제는 산처럼 쌓여 있는 국가기록물과 좋은 책들이 모두 한자로 되어 있어 쉽게 읽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조선왕조실록처럼 모두 번역되어 인터넷으로 조회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 더 많다. 한자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 고전 번역을 위한 국가적인 지원과 대책이 시급하다. 책 제목은 책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으로, 선현들의 책을 읽어보기 어려운 현실에서, 책 제목의 의미만이라도 정확히 안 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삼국시대 각국의 흥망과 변천을 기술한 역사서이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서 ‘빠진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유사(遺事)’라는 말이 ‘남겨진 사실’ 혹은 ‘빠진 일’이라는 뜻이니, 이 책의 제목이 삼국사기와 어떻게 다른지를 암시한다. 고려사(高麗史)는 ‘고려의 역사’ 책이지만 조선시대 세종 때 편찬되었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는 고려사를 ‘줄여서 요약’한 책인데, 원본은 일본에 소장되어 있다. 제왕운기(帝王韻紀)는 고려 때 이승휴가 중국(帝)과 우리나라(王) 역사를 운율시(韻) 형식으로 기록한(記) 책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은 ‘다스림(治)에 도움(資)이 되고 역대를 통하여(通) 거울(鑑)’이 된다는 의미의 책이다. 11세기 중국의 사마광이 지은 이 책은 왕부터 신하까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동국통감(東國通鑑)은 자치통감을 모델로 세조 때 서거정 등이 단군부터 고려말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동국(東國)은 중국 ‘동쪽에 있는 나라’인 우리나라의 다른 이름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은 여지(輿地)가 ‘땅’ 혹은 ‘지리’를, ‘승람(勝覽)은 ‘열람’ 혹은 ‘보기’를 뜻하니, ‘조선의 지리 엿보기’ 정도의 뜻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문자 그대로, ‘새롭게 보완된 조선의 지리 엿보기’이다. 

조선 선비들은 왕을 위해 맞춤형 책을 쓰거나 상소하여 공부에 힘쓰기를 권했다. 성학집요(聖學輯要)는 율곡 이이가 쓴 제왕학 교습서로 ‘성인이 되기 위한 배움의 요점’을 정리한 책이다. 격몽요결(擊蒙要訣)은 ‘어리석음을 깨는 중요한 비결’을 담은 책이니 공부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다. 만언봉사(萬言封事)는, 만언소(萬言疏)라고도 불리는데, 율곡이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봉사(封事)’는 ‘상소문’이라는 뜻으로, 비밀 유지를 위해 검은 천으로 봉해서 붙인 이름이다. 만언봉사는 ‘만자에 이르는 상소문’으로 실제 12,000자 정도 된다고 한다. 성학십도(聖學十圖)는 퇴계 이황이 선조에게 왕이 공부해야 할 학문 요점을 열 개 그림으로 그려 설명한 상소문이다. 무진육조소(戊辰六條疏)는, 역시 퇴계 상소문으로, ‘무진년에 여섯 가지 조목으로 올린 상소문’이다. 

다산 정약용은 18년간 귀양 생활을 하면서 500권 이상의 책을 저술하였다. 이 중 1표2서(一表二書)가 유명하다. 1표인 경세유표(經世遺表)는 ‘세상을 다스리는 일에 관해 남긴 글’이다. 여기서 표(表)는, 제갈공명의 ‘출사표(出師表)’에서 보듯, 임금을 위해 남기는 글이다. 2서 중에서 흠흠신서(欽欽新書)는 살인과 같은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한 다산의 생각을 담은 글로, 여기서 흠흠(欽欽)은 ‘삼가고 삼가고’ 의미로, 철저히 헤아려 억울함이 없도록 하라는 의미이다. 목민심서(牧民心書)는 목민관으로 불리는 지방수령이 마음속 깊이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책이다.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는 다산이 지은 ‘우리나라(我邦) 땅(疆域) 이야기(考)’다. 

2023년 현재 우리나라 세계기록유산은 494개에 이르고 있다. 세계가 인정한 귀중한 유산을 후손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무관심으로 방치하는 것은 도리가 아닐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다양한 기록과 책들을 읽기 쉽게 번역하고 널리 알리는 일을 시작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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