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일당백의 명장’ 반계리 은행나무
[비로봉에서] ‘일당백의 명장’ 반계리 은행나무
  • 심규정
  • 승인 2023.11.05 2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금갑옷을 입은 모습은 무척 위풍당당해 보였다. 소담하고 얌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웅장하면서도 포용력 있는 자태는 가히 군계일학이다. 문막읍 한적한 시골마을에 우뚝 솟은 반계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167호)는 언제나 초연(超然)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다.

지난 3일 열린 반계리 은행나무축제에는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인파가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단풍 초입인 10월 초순부터 일찌감치 외지 관광객이 몰려 인근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했다니 위상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원주시 이선화 관광과장은 “탐방객들을 보면 대부분 입소문을 듣고 찾은 외지인들”이라며 “아마 전국의 가을 관광지 가운데  반계리 은행나무 만큼 핫플레이스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64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 800살~1,000살로 추정된 반계리 은행나무는 지금은 아마 860살~1,060살은 됐을 것이다. 우리 역사로는 고려시대, 세계사로는 동로마제국 시대에 싹이 텄을 것이다. 천연기념물(나무)위상을 말할 때는 나이(수령), 크기(수고), 둘레(흉고)가 잣대다. 국가 문화유산포털에 의하면 반계리 은행나무는 둘레가 16.2m로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수관 웅장미의 끝판왕이다. 갖은 풍상을 이겨낸 ‘인내의 화신’이자 지역의 희노애락을 묵묵히 지켜본 산증인이다. 

[사진=원주시청 제공]
[사진=원주시청 제공]

지표면에 울퉁불퉁 돌출된 어른 허벅지만 한 뿌리가 족히 10m 이상 갈기갈기 사방으로 퍼져있으니 굳이 나이테를 들먹이지 않아도 장수 할아버지의 압권이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사계절 관광자원이다. 초록 압각수(鴨脚樹, 오리발을 닮은)가 햇빛을 받아 신비스런 연초록을 발하는 봄, 강한 직사광선을 받아 진초록을 자랑하는 여름, 눈부신 금빛 아우라를 자랑하는 가을, 시나브로 알몸인 채로 바닥에 노란 양탄자를 쫙 깔아주는 늦가을~초겨울, 앙상한 가지에 가녀린 눈꽃이 피는 겨울. 많은 나무들이 모두 계절색을 자랑하지만, 만능배우처럼 변화무쌍한 반계리 은행나무의 계절색은 매력만점이다. 

지난 2005년 KBS는 「대한민국의 가치 재발견」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에서 키(64cm)가 가장 큰 것은 물론 은행나무 중 최초로 천연기념물(30호)로 지정된 용문사 은행나무(수령 1,100~1,500년)를 소개했다. 당시 전문가는 용문사 은행나무가 향후 200여 년을 더 생존한다는 가정하에 경제적 가치는 무려 1조 6,884억 원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전국에서 은행나무를 테마로 한 축제는 많다. 충남 아산시 은행나무길 축제, 홍천군 은행나무축제, 충남 보령시 청라은행마을 단풍축제, 충북 괴산군 양곡은행나무축제 등등. 대부분 은행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에서 열리고 있다. 그러나 반계리 은행나무는 독야청청 일당백, 아니 일당천으로 축제의 위상을 더하고 있으니 유무형의 가치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사진=원주신문DB]

1,000년의 인생 여정을 당당하고 꿋꿋하게 버텨온 반계리 은행나무. 원주시가 지난 2021년부터 반계리 은행나무 일대에 추진 중인 광장 조성, 보행자 도로 확충, 주차장 조성사업은 부족함이 있어 보인다. 만년해로 해서 시민들의 영원한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주위 조망권도 확보하고 접근성을 더 확보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용문사 은행나무가 조선시대 당상관(국장급) 벼슬을 받은 것처럼, 충북 보은 소나무가 정이품(장관급)의 벼슬을 받은 것처럼 반계리 은행나무도 존재감에 걸맞게 원주시 차원의 관직을 부여하는 것은 어떨까? 또 하나. 원주시 상징물로 활용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미래의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선견지명이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