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로수는 도심의 품격이다
[기고] 가로수는 도심의 품격이다
  • 김대중
  • 승인 2023.11.12 20: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로수까지 제거하고
중국단풍으로 덮은 것은 정말 아이러니의 극치다.
△김대중 [원주옻칠기공예관장]
△김대중 [원주옻칠기공예관장]

가을 막바지를 넘어 초겨울에 들어섰다. 며칠 전 몰아닥친 비바람에 올 가을도 우리를 훌쩍 떠났다. 꽃으로 덮였던 봄날을 훅 보내버리더니 가을마저 훅 보내버렸다. 곱디고운 단풍으로 덮였던 가을날도 어김없이 그렇게 떠나버렸다. 때론 며칠 더 즐길 시간을 주었으면 하고 아쉬워해도 심술쟁이 비바람은 악착같다.

봄날 꽃과 가을의 단풍은 역할이 같다. 세상을 아름답고 예쁘게 단장한다. 가을 단풍도 그렇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기쁘게 한다. 봄과 가을에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고 나들이에 나서는 이유다. 꽃과 단풍의 유혹에 장사가 없다. 도심에선 그 역할의 중심이 가로수다. 봄엔 꽃을 피우고 가을엔 단풍을 만들어 도시를 치장한다. 자연의 디자이너 나무는 가로수가 되어 도시의 디자이너가 된다.

올 가을 도심에서 유난히 눈에 띈 것이 있다. 원주 도심의 컬러였다. 가로수였다. 그냥 붉은색 천지였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유심히 보니 언제부턴가 중국단풍이 도심 가로수의 중심이 되었다. 도심에서 흥업 간 대로에는 중국단풍이 두 줄로 심어져 있다. 행구동 수변공원 가는 길도 중국단풍이다. 하나로마트에서 원주여중 사이의 길에도 마찬가지다.

3~4년 전인가 그 이전에 심어진 나무들이라 어려서 나무 생김 자체도 볼품이 없다. 그 외에도 도심 곳곳이 중국단풍이다. 좀 관심을 갖고 가로수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중국단풍은 원산지가 중국이지만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다. 원산지 때문이 아니라 별로 아름답지가 않아서다. 특히 어려서는 더 그렇다. 쉽게 은행나무 단풍과 비교가 된다. 벚나무도 단풍이 예쁘다. 벚나무는 봄엔 꽃을 선물하지만 가을에 알록달록 단풍을 선사한다. 다양한 컬러가 매력이다.

도심에서부터 외곽으로 도로 개설과 확장 구간까지 깡그리 중국단풍으로 뒤덮은 이유가 궁금하다. 행구동 가는 길은 행구동의 상징인 살구나무 가로수였다. 원주여중 가는 길은 아주 폼나는 고목(古木) 벚나무였다. 원주란 도시를 상징할 수 있는 소박한 정체성을 보여준 길이었다. 이런 가로수까지 제거하고 중국단풍으로 덮은 것은 정말 아이러니의 극치다.

지구상 생명체 가운데 늙을수록 아름다운 것은 나무뿐이다. 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줄기와 가지의 수형도 아름답지만 꽃과 잎도 더 기품을 낸다. 그야말로 품격이 우러난다. 반계리 은행나무가 거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원주 도심에선 그런 기품 있는 가로수들이 배겨 나질 못한다. 아름다운 자태를 보일만 하면 하루아침에 베어버린다. 참 드문 도시다. 오죽하면 ‘원주는 역사가 깊은 도시라는데 도심 가로수를 보면 신도시 같다’라는 말들을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가끔 다른 도시를 여행할 기회가 있을 때 모든 것들이 새롭고 즐겁지만 가로수에 눈길이 많이 간다. 눈에 잘 띄고 거리와 건물 등 도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수원, 순천, 강릉, 부산, 남원 등의 도심에는 인상적인 가로수 길들이 있다. 이들 도시에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이유 중에 하나 일 것이다. 가로수가 예뻐서 소문난 도시들은 많다.

특별히 돈 들이지 않아도 인플루언서들이 알아서 홍보해 주니 일석이조다. 원주는 역사가 깊은 도시다. 고구려 때부터 시작이다. 평원군에서 시작돼 북원경을 거쳐 원주가 되었다. 평원과 북원이란 이름은 원주의 고대사(古代史)이다. 고대사가 아니어도 원주는 500년 강원감영의 도시다. 품격과 기품 있는 역사를 지닌 도시인지 혼란스럽다. 가로수 하나라도 생각을 했으면 어떨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