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충전소] 서광계와 그의 후손들
[지식충전소] 서광계와 그의 후손들
  • 최광익
  • 승인 2023.11.19 2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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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을 쌓은 집에 좋은 일이 넘친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옛말에서 보듯,
한 집안의 흥망성쇄는 조상들의 행위에 달려있는 것일까
△최광익 [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장·교육칼럼니스트]
△최광익 [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장·교육칼럼니스트]

상하이(上海)는 우리에게 친숙한 도시다. 거리도 가깝고, 우리나라 임시정부가 수립된 곳이며, 세계 최대 물류 도시다. 아편전쟁 후 난징조약으로 서방에 개방되어 중국 근대화를 이끈 도시다.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 장아이링의 <색계>도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뎡사오핑 이후 중국을 이끈 장쩌민 주석의 ‘상하이방(上海帮)’이 권력의 실세로 이름을 날렸지만, 상하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명나라 말기 학자이자 정치가인 서광계(徐光啟)이다. 빼이징에서 정치를 그만두고 고향인 상하이로 낙향해 그와 그의 후손들이 살아온 지역이 오늘의 쉬자후이(徐家汇, Xujiahu)이다. 이 지역은 현재 상하이 16개 구 중 하나로 “서광계 집안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서광계는 젊은 시절 남북을 유람하다 광둥에서 이탈리아 선교사 라차로 카타네오를 만나 천주교를 처음 알게 되었다. 과거에 급제한 서광계는 한림원에서 관직을 얻고 선교사 마테오 리치를 만나 서양의 천문, 역법, 수학, 군사 분야를 공부하게 된다. 그는 정밀한 서구의 수학적 사유에 매료돼 한림원 관원의 신분으로 유클리드 기하학 연구에 몰두한다. 마침내 마테오 리치와 함께 <기하원본(幾何原本)> 전 6권을 간행한다. 오늘날 수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하, 점, 선, 면, 평행선, 직각, 예각 등의 단어는 서광계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아편전쟁 230년 전의 일이었다.

그는 처세에도 능해 서양의 수학적 사유를 하면서도 당시의 봉건제에 도전할 정도로 우매하지 않았다. 진보적 학문을 좋아하지만 유순하고 영리하여 전통문화를 열심히 배워 현실에 잘 대처했다. 그는 원대한 이상을 꿈꾸거나 주도면밀한 계획을 도모하지 않았고, 죽음을 무릅쓰고 무언가를 간언하지도 않았으며, 학문과 글쓰기에만 전념하지도 않았다.

황제의 신임을 얻어 예부상서라는 높은 자리에 올랐고 천주교 전파에 온몸을 바치며 서구의 과학문명을 신뢰했다. 그가 죽자 명나라 숭정제는 하루 동안 조정을 임시로 폐쇄하며 애도했다. 조정은 ‘문정공(文定公)’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리고, 교회는 그의 묘지 앞에 라틴어 비명을 세웠다. 한마디로, 그는 원만하며,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이룰 것을 모두 이룬 사람이었다.

서광계의 16대손은 군인인데, 그의 딸은 저장성의 유명한 기독교 집안인 예가(倪家)로 출가하여 계진(桂珍)이라는 딸을 낳았다. 예계진倪桂珍)은 18세에 감리교 목사인 쑹자수(宋嘉樹)와 결혼했다. 부부는 금슬이 좋아 모두 여섯명의 자녀를 낳았다. 이들은 장성해 중국 근대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쳐 예계진은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여섯명의 자녀 중 세 딸은 흔히 ‘송씨 세자매’로 알려져 있다. 첫째 아이링(藹齡)은 중국 최대재벌 쿵샹시의 부인이 되었고, 둘째 칭링(慶齡)은 중국 국부인 쑨원, 셋째 메이링(美齡)은 장제스와 결혼하여 한 시대를 풍미했다. 아이링은 재벌의 부인이었던 만큼 평생 풍족한 삶을 누리며, 동생들의 어려움이 있을 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칭링은 쑨원이 죽은 후 중국공산당에 가담하여 중국 국가부주석 자리까지 올랐다. 메이링은 장제스가 마오쩌뚱에게 패해 본토에서 쫓겨나 타이완에 정착한 후 퍼스트레이디로 삶을 이어갔다. 장제스 사후에는 미국으로 이주했고, 장제스의 전처소생인 대만총통 장징귀는 계모인 메이링이 죽을 때까지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첫째 아이링의 바람이었던 둘째 칭링과 셋째 메이링의 자매간 정치적 화해는 죽을 때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세 자매를 가르켜 ‘돈을 사랑한 아이링, 중국을 사랑한 칭링, 권력을 사랑한 메이링’이라 부르고 있다. 1997년에 만들어진 중국영화 <송가황조(宋家皇朝)>는 송씨 가문의 영향력을 잘 그리고 있다.

“선행을 쌓은 집에 좋은 일이 넘친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옛말에서 보듯, 한 집안의 흥망성쇄는 조상들의 행위에 달려있는 것일까. 중국 최초의 기독교도인 서광계와 그의 후손들 이야기는 오늘 우리의 품행을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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