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다] 타인들의 하루
[안부를 묻다] 타인들의 하루
  • 임이송
  • 승인 2023.11.26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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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가 평안한 건
누군가의 수고로움의 대가일 것이다.
△임이송 [소설가]
△임이송 [소설가]

오늘은 모처럼만에 여유를 부리고 싶었다. 큰일 세 가지가 어제 모두 끝나 숨을 고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늦잠도 자고 햇살이 들어오는 의자에 앉아 망연히 멍도 때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 어느 날보다 일찍 일어난 데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다 보니, 시간이 낮잠을 자는 것처럼 지루하게 느껴졌다.

나는 살아오는 동안 타인의 하루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을까. 사람에게 ‘하루’라는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은 각 사람들에게 다른 속도와 의미와 무게로 다가올 것이다. 몸이 아픈 사람, 마음이 아픈 사람, 일에 지친 사람,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한 사람,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겐 더욱더.

최근 4년을 바쁘게 지냈다. 늘 시간이 부족하여 새벽까지 일을 끝내고 잠드는 일이 잦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며 지내서였는지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내 시간을 타인이나 사회적 통제에 의해 크게 방해받지도 않았다.

최성문 작가의 ‘아시아인들과 함께 하루를 쓰다’라는 프로젝트를 보면, ‘하루’라는 시간이 구체적인 몸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18개국 아시아인 365명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숫자를 종이에 쓰게 하여 그것으로 달력을 만들었다. 그는 특히 우리나라의 다문화 이주민들이 소외받는 모습이 안타까워 그들에게도 공평한 하루를 선물하고 싶어, 그들이 써준 날짜로 달력을 만들었다고 한다.

내 주변에 있는 타인들은 그들의 하루를 무엇에든 차별받지 않고 잘 쓰며 지내고 있을까. 나는 무거운 택배를 보내야 할 때와 많은 쓰레기를 버려야 할 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 대신에 그 일을 감당할 누군가에게. 그리고 나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나와 남편을 위해 쓴다. 나머지 시간은 부모와 자식들을 챙기는 데에 쓰고 친구들과 지인들에게도 쓴다. 주로 나와 인연이 깊은 사람들에게 사용한다. 잘 모르는 타인의 하루를 염려하거나 그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은 지는 몇 년 되었다.

최성문 작가는 각 날짜가 쓰인 365장의 종이를 허공에 걸거나 바닥에 흩뿌려놓았다. 종이 한 장에 쓰인 각각의 하루. 그것은 터키나 네팔, 몽골, 베트남 사람의 하루일 수도 있고 내 이웃의 하루일 수도 있다. 그들이 나와 같은 온도의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편안한 잠자리에서 잠들었을까. 5월 5일이든 12월 27일이든 하루의 길이가 같았을까.

나의 하루는 다른 사람들에겐 타인의 하루가 될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의 하루가 힘들었을 땐, 누군가에게 위로 받고 싶었다. 나 또한 그만큼의 마음과 시간을 타인을 위해 썼다. 그러나 요즘 나는 그렇지 못하다. 어느 한 순간, 타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힘겹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힘을 주려면 내게 온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에너지가 없었다.

TV에 가난한 아프리카 아이들의 모습이 나오면,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려버린다. 따뜻한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불편해서이다. 남편은 오랫동안 기부를 해왔었다. 그 기부금이 불편하고 힘들고 아프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닿아 어느 한 사람의 하루가 잠시나마 행복하였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가 외면한 타인은 그만큼 나와는 다른 하루를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하루가 평안한 건 누군가의 수고로움의 대가일 것이다. 내 행복도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만들어지지 않듯 타인을 위한 마음 또한 품고만 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타인을 위한 몸짓을 다시 시작하려면 내 손부터 따스하게 해야 한다. 종이에 쓰인 날짜가 각 사람들의 얼굴로 다가오는 듯하여 마음이 오래, 거기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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