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최영미 作 / 분리수거
[시가 있는 아침] 최영미 作 / 분리수거
  • 원주신문
  • 승인 2023.12.03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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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거

최영미

너를 향한 나의 애증을 분리수거할 수 있다면

원망을 원망끼리

그리움은 그리움끼리

맥주 깡통 따듯 한꺼번에 터트릴 수 있다면

2주마다 한번씩 콱! 눌러 밟아 버린다면

 

너를 만나 오월과 너와 헤어진 시월을 기억의 서랍에 따로 모셔둔다면

아름다웠던 날들만 모아 꽃병에 꽃을 수 있다면

차라리, 홀로 자족했던 지난 여름으로 돌아가

네가 준 환희와 고통을 너에게 되돌려줄 수 있다면

여름에 가을을, 네가 없어 끔찍했던 겨울을 미리 앓지 않아도 되리라

 

늦기 전에, 아주 더 늦기 전에

내 노래가 너를 건드린다면

말라 비틀어진 세상의 가슴들을 흔들어 뛰게 한다면

어느날 문득 우리를 깨우는 봄비처럼

아아—우우—허공에 메아리칠 수 있다면

최영미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창작과 비평사 에서

가끔 언어라는 것도 스펀지처럼 물을 흠뻑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있는 반면, 모레처럼 다 비워 낼 것 같은 배수가 강한 언어를 본다 서정성이 흡입력이라면 비(非)서정성 이 배수력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최영미 시인의 시가 배수력이 뛰어난 언어를 갖고 있는 시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비서정성이 서정성을 배척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언어적 특성, 표현적 기교에서 개인의 성향이 특정한 의식에 도출을 지향하기 때문에 비서정성에 강한 의식의 전달을 하고 있다. 이 시 「분리수거」는 현실적 문제 접근을 통해 정신적 문제를 접근해 다루고 있다. 사람 삶의 내면도 분리수거를 통해 각각의 필요성을 동반한 분리가 가능하다면 더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내적인 저항에서부터 최영미 시인은 삶의 출구를 찾고 있다. 아마 아름다운 날들만 모아 꽃병에 꽂아 두고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분리수거 되지 않고는 행복이라는 것이 온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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