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왕국의 팝송 이야기] (5) Scarborough Fair ①
[최왕국의 팝송 이야기] (5) Scarborough Fair ①
  • 최왕국
  • 승인 2023.12.10 2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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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터에는 영국은 물론 북유럽과 동유럽 등
여러 곳에서 상인들이 모여 들었다고 하니 거의
준 엑스포(Expo)급 국제 행사였다고 볼 수 있다.
△최왕국 [KBS오케스트라 편곡자]
△최왕국 [KBS오케스트라 편곡자]

영화 〈졸업〉 OST에 수록된 또 하나의 명작 

만일 본인이 들었다면 펄쩍 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 〈졸업〉은 그닥 잘나가는 편은 아니었던 배우 더스틴 호프만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이 영화의 OST에는 「The Sound of Silence」 외에도 여러 노래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스카보로 시장(Scarborough Fair)」이라는 노래가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원래 영국 민요인 이 노래의 가사는 매우 상징적이고 철학적인데다가 오랜 세월 구전되어 전해지면서 가사와 멜로디가 조금씩 바뀌어 여러 버전이 존재하기 때문에 영미권 평론가들조차도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 내용이다.

< Scarborough Fair >

노래 제목에서 ‘Scar’는 동네 이름이고, ‘borough’는 작은 마을의 행정단위를 뜻한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면’이나 ‘읍’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두 단어가 합쳐져서 ‘Scarborough’가 된 것이며 원주시의 경우 ‘소초면’이나 ‘문막읍’을 예로 들 수 있겠다.

‘Fair’는 ‘시장’을 뜻하는데, 이건 그냥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바자회도 열리고, 사람도 만나 떠들썩거리는 일종의 축제 같은 장터를 말한다.

< 노래 속의 노래 >

한편 사이먼 & 가펑클이 부른 「스카보로 시장」에는 원래 멜로디의 각 악구 말미에 긴 음으로 끌거나, 쉬고 있을 때 필인(Fill in), 또는 대선율의 형태로 ‘Canticle’이라는 노래가 나오는 2원화된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그래도 가사 내용이 심오한데, 이러한 구조 때문에 가사 해석이 더욱 복잡해진 측면도 있다. 참고로 ‘Canticle’은 ‘찬송가’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반전 평화주의’적인 내용이다.

마치 ‘액자 소설’처럼 두 개의 노래가 하나의 작품으로 엮여있는 이러한 형태는 최근 성가 합창곡의 편곡법으로도 유행하고 있으며 중세·르네상스 시대의 모테트에서도 희미하게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개의 노래를 이질감 없이 하나의 곡으로 엮어낸 사이먼의 음악적 실력에 감탄이 절로 나오며, 이렇게 해서라도 반전과 평화를 외치고 싶었던 그의 마음에 존경을 표한다.

링크된 유튜브 영상은 사이먼 & 가펑클이 부른 「스카보로 시장」의 가사와 번역이 나와 있는 노래인데, 괄호( ) 안에 쓰인 가사는 ‘Canticle’이며 원곡은 가펑클이, Canticle은 사이먼이 부른다.

< 가사 해설 ① >

원곡의 가사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인이 “스카보로 시장에 가시거든 그녀에게 제 안부를 전해 주세요”라고 부탁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Scarborough Fair」란 중세 영국 요크셔 지방의 ‘Scarborough’라는 마을에서 열리는 장터로서 매년 8월 중순부터 45일 정도 열렸다고 한다. 마을의 규모에 비해서 상당히 큰 행사였던 이 장터에는 영국은 물론 북유럽과 동유럽 등 여러 곳에서 상인들이 모여 들었다고 하니 거의 준 엑스포(Expo)급 국제 행사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곡의 가사에서 특이한 점은 각 절마다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이라는 가사가 꼭 한 번씩 등장한다는 것이다. 마치 바그너의 ‘라이트 모티브’를 연상시키는 느낌이랄까? 1절에서는 진열된 주요 상품들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2절부터는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라는 가사가 맥락 없는 단어로 느껴질 수 있다.

참고로 이 품목들은 서양에서 즐겨 쓰는 허브의 이름들이다. ‘파슬리’는 요리의 향신료로 쓰이며, 소화를 돕고 쓴 맛을 없애는 재료였고,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화환의 재로로도 쓰였다. ‘세이지’는 변치 않음을, ‘로즈마리’는 사랑과 추억과 정절을 상징하며 ‘타임’(백리향)은 용기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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