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충전소] 어느 장의사의 일기
[지식충전소] 어느 장의사의 일기
  • 최광익
  • 승인 2023.12.17 2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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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의 몸을 닦고 수의를 입혀 관에 넣어
인생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납관사라는 직업을
매우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최광익 [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장·교육칼럼니스트]
△최광익 [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장·교육칼럼니스트]

일본 작가 아오키신몬(靑木新門)은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젊은 시절 구인 광고를 보고 관혼상제회사에 취직해 입관하는 일을 시작한 후 회사의 전무이사 자리까지 오른다. 그의 소설 「납관부 일기(納棺夫 日記)」는 그가 쓴 일기를 바탕으로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되묻는 아름다운 영혼의 기록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네 살 때 부모를 따라 만주로 건너간다. 8살 때 태평양 전쟁의 패전을 맞는다. 만주에서 태어난 여동생과 남동생은 발진티푸스에 걸려 수용소에서 죽는다. 시베리아 전선으로 떠난 아버지와는 소식이 끊기고 어머니와 함께 도야마(富山) 고향 생가로 돌아온다. 큰 저택인 생가에는 조부모가 살고 있는데, 집성촌 종가로 평생 일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고부갈등으로 어머니는 집을 나가고, 주인공은 큰 저택에서 우울한 소년기를 보낸다.

저택의 일부를 팔아 대학에 간 주인공은 걸핏하면 휴강에 데모하는 분위기 속에서 운동권에 가담하게 된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내려온 후 대학으로 돌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카페를 연다. 지역 시인 화가들과 매일 고주망태가 된 날을 보내면서 가게는 망하고, 아내는 첫 아이를 낳았다. 가난으로 인해 심하게 부부싸움을 한 날 우연히 신문 구인난에서 ‘관혼상제 상조회 사원모집’ 공고를 보고 납관부의 삶을 살게 된다.

납관부의 업무는 염습(斂襲)과 납관(納棺)이다. 염습은 사망한 사람을 저승으로 보낼 때 몸이라도 깨끗하게 해주자는 뜻에서 물로 온몸을 닦는 풍습이다. 염습을 하고 수의를 입혀 관에 안치하는 것이 납관이다. 일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집에서 염습과 납관을 하며, 가족과 친지가 이 과정을 지켜본다.

납관부가 된 후, 삼촌은 집안 망신이라며 다른 일 찾기를 재촉하고, 아내는 불결하다며 잠자리를 거부한다. 옛날 연인의 집에서 납관하는 장면도 인상 깊다. 연인은 오래전 다른 곳으로 시집갔고, 옛날 그녀가 그토록 만나주기를 바라던 그녀의 아버지를 염습해야 한다. 가족과 친지 속에는 그녀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작업을 하는 동안 얼굴에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이마의 땀방울을 흰옷 소매로 닦으려는 순간, 옆에서 땀을 닦아주는 여인이 있다. 눈동자 가득 눈물이 그렁그렁한 옛날의 여자친구. 그녀는 작업이 끝날 때까지 곁에 앉아 얼굴의 땀을 닦아준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순간 그녀의 남동생이지 싶은 상주가 두 손을 방바닥에 짚고 정중하게 인사한다. 그 뒤쪽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 경멸이나 서글픔 동정 따위는 털끝만큼도 없는 감사함의 눈빛을 통해 그의 존재를 인정받는 기쁨을 느낀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2008년 <굿바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일본어의 원제목은 ‘おくりびと 오쿠리비토’ 즉, ‘떠나보내는 사람’이다. 영화는 시체의 몸을 닦고 수의를 입혀 관에 넣어 인생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납관사라는 직업을 매우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이라는 일본의 가치관을 담아낸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 영화제의 상을 휩쓸며 큰 관심을 받았다. 영화의 영어 제목이 ‘departure 새로운 출발’인 점도 좋은 번역이다.

이 책은 2009년 국내에 <납관부 일기>로 처음 소개되었다가, 올해 <어느 장의사의 일기>로 개정 출판되었다. <굿바이> 영화도 유명 영화 포털에서 쉽게 다운받아 볼 수 있다.

참고도서: 아오키 신몬. 조양욱 옮김. 어느 장의사의 일기. 문학세계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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