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박남수 作 / 종소리
[시가 있는 아침] 박남수 作 / 종소리
  • 원주신문
  • 승인 2024.01.07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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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박남수

 

나는 떠난다. 청동(靑銅)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진폭(振幅)의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하나의 소리가 되어.

 

인종(忍從)은 끝이 났는가.

청동의 벽에

‘역사’를 가두어 놓은

칠흑의 감방에서.

 

나는 바람을 타고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꽃에서는 웃음이 되고

천상에서는 악기가 된다.

 

먹구름이 깔리면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뇌성(雷聲)이 되어

가루 가루 가루 음향이 된다.

김희보 편저 『한국의 명시』, 《종로서적》에서

박남수 시인의 ⌜종소리⌟는 종소리 그 자체를 귀로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는 시각화된 묘사가 한 폭의 그림을 그려 놓았다. 언어의 붓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그림을 그려 놓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요즘이야 녹음을 하고 그 소리를 오래도록 보관하여 반복적으로 들을 수 있지만, 녹음기가 발달되지 않는 시대에는 소리는 사실적 표현 그 자체가 글과 그림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요즘이야 많은 영상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많은 소리들을 경험하여 알고 있지만, 호랑이 소리를 몇 백 년 전에 과연 몇 명이나 듣고 기억하고 있었나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종소리는 보통 사찰에서 예불을 드릴 때와 성당의 종소리 등이 대표적 소리로 들었던 기억이 있지만, 요즘은 소리도 공해라 하여 그 소리를 도시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다. 소리가 멀리 진폭이 되어 날아가기 때문에 새로 말했을 것이고 그 새가 소리를 세상에 널리 퍼트린다고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때문에 하늘의 먹구름처럼 그 소리가 갈리면 하늘의 꼭지에서 터지는 소리가 가루 가루 가루 음향이 된다고 말한다. 소리 그 자체를 눈으로 보이게 만들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들 가슴속에 귀로만 들렸던 소리를 눈으로 확인해 주었다는 점이 이 시의 특징이다. 이 시를 읽을 때 문법적 접근을 마음에서 밀어내면 시는 아름다운 꽃이다. 박남수 시인의 종소리도 그냥 눈으로 바라보는 종소리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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