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다] 당신, 괜찮은가요
[안부를 묻다] 당신, 괜찮은가요
  • 임이송
  • 승인 2024.01.14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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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송 [소설가]
△임이송 [소설가]

새해가 도착했다. 나는 손에 모자를 쓰지 않았고 발가락에 분칠을 하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새해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을 넘은 건 분명한데, 투명 망토를 입고 몰래 들어온 도둑을 만난 것처럼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럼에도 새해라니, 새로운 마음으로 맞을 일이다.

작년엔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괜찮은가요?’라고 물어봐 주기를 기다리고 바랐다. 자주 그래 주기를 바랐다. 특별한 슬픔이나 고난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런 마음으로 한 해를 보냈다. 무엇이 가장 괜찮지 않았을까. 무엇 때문에 힘겨웠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패러다임의 변화 때문이었다. 작년은 ‘나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가’라는 명제에 대한, 그간의 나의 생각이 바뀐 해였다. 사람에 대한 온도 문제로 내내 혼돈 상태에 빠져 있다가 마침내 새로운 결론에 이르렀던 시간이었다.

그 흔들림은 몇 년 전, 한 사건에서 촉발되었다. 그 사건은 평생 품어 온 가치관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을 만큼 파장이 컸다. 2여년간 침묵하고 생각하고 또 침잠하고 숙고하기를 반복했다. 결국,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봄날의 이른 풀 같은 존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앞으로 꽃샘추위와 세찬 바람이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어린 풀 같은. 사람들 모두가 알 수 없는 세상에 처음으로 고개를 쏘옥 내밀고 있는 작은 풀 같은. 그들이 나이가 많든 적든, 많이 배우든 그렇지 않든 간에.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고 어떤 추위에도 몸을 움츠리고 마는. 바깥의 사나운 것들이 침범할 때마다 각자의 몸에 이롭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라는 걸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런 결과에 이르자, 내가 알고 있었던 사람의 반을 잃어버린 것 같은 허전함이 밀려왔다. 그러느라 아팠다. 그는 정다워서 좋았고, 그는 한결같아서 미더웠고, 그는 늘 그곳에 있어 안심이 되었고, 그는 씩씩해서 든든했고, 그는 나를 변함없이 아껴줘서 고마웠고,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 기뻤는데…. 나는 각기 다른 이유로 그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나는 그 사건 이후 그들 모르게 마음 밭을 바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느라 작년 한 해가 괜찮지 못했다. 밭을 갈아엎는 통증을 고스란히 느껴야 했다. 그래서 누가 나에게 ‘잘 지내느냐’며, 물어봐 주기를 기다렸다.

2024년 1월 1일. 2023년 한 해를 닫고 새해를 열어 맞아야 할 시간이다. 어떻게든 지나간 것과 다가올 새로운 것에 대한 경계를 만들고 싶다. 그것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유연해지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정답고 따뜻하고 깊고 애틋하고 아련한 것들과 나에게 위험하고 안타깝고 아픈 것들에 대해 때론 활짝 때론 담백하게 때론 무감하게 그것들을 구분하고 구별하여 맞고 보내고 싶다. 지나온 모든 것들을 타자화(他者化)하고 정지화면처럼 남아 있는 것들조차 대상화하여 모두 보내버린 후, 여러 얼굴로 분화하여 그들을 예전과 다르게 사랑하고 싶다. 가볍되 소중하게. 집착하지 않되 깊게, 진심스럽되 소모되지는 않게 가장자리를 걷듯.

그리하여 나는, 작년과 달리 타인에게 ‘당신, 괜찮은가요?’ 하고 물어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가 괜찮아지고 싶었던 것만큼 그들도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정한 안부가 그리운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그 어떤 시대보다 다정함에 인색하다. 각자가 섬처럼 인해(人海)에 부유하고 있다. 섬과 섬 사이에 안부라는 기호로, 사랑하는 이들의 영역에 잠잠한 빛처럼 스미고 싶다. 들썽거림 없이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다. 그렇게 새해를 명명한 후 시각적으로 경계를 지어, 담담한 형식으로 첫 시간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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