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수명 作 / 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시가 있는 아침] 이수명 作 / 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 원주신문
  • 승인 2024.01.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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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이수명

 

자신을 찍으려는 도끼가 왔을 때

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도끼로부터 도망가다가 도끼를 삼켰다.

 

폭풍우 몰아치던 밤

나무는 번개를 삼켰다.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더 깊이 찔리는 번개를 삼켰다.

이수명 시집 『붉은 담장의 커브』, 《민음사》 에서

이수명 시에서 묘사되는 언어는 부분적인 것을 통해 전체를 바라보게 하는 시각적인 효과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는 인연의 고리를 연결하고 있다고 본다. 어떻게 나무가 도끼를 삼키겠는가. 그러나 자세히 바라보면 내리치는 도끼가 나무를 찍고 그 찍었던 도끼가 빠지지 않았다는 것은 나무가 도끼를 삼킨 꼴이 되고 말았다. 우리 삶 속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많이 있다. 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을 때 우리는 강이 사람을 삼켰다고 말한다. 제 재주의 힘을 믿고 덤비면 과한 그 힘으로 인하여 불행을 자초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힘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읽을 수 있다. 나무를 다루는 요령을 터득하고, 그리고 나무의 결을 잘 파악하여 도끼를 내리쳤다면 나무가 도끼를 삼키지 않았을 것이다. 힘이 없고 나약하다고 무시하고 얕보는 경우가 있다. 왜 나무가 도끼를 삼킬 만큼 큰 힘을 가졌겠는가? 이수명 시인은 폭풍우 몰아치던 밤 번개를 삼켰고, 그 삼킨 번개가 나무의 살 속 깊이 박혀 있기 때문에 도끼날이 파고들어도 그 무서움을 이겨내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가난하고 힘없는 민초들에 그 어떤 환경에서도 제 삶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것도 모두 천둥번개 같은 무서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살아가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 삶의 이치를 이 시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다. <임영석 시인의 시내마천국 (詩川魔天國).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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