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재무 作 / 벼랑
[시가 있는 아침] 이재무 作 / 벼랑
  • 원주신문
  • 승인 2024.01.2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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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이재무

벼랑은 번번이 파도를 놓친다

외롭고 고달픈

저 유구한 천년만년의 고독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철썩철썩 매번 와서는 따귀나

안기고 가는 몰인정한 사랑아

희망을 놓쳐도

바보같이 바보같이 벼랑은

눈부신 고집 꺾지 않는다

마침내 시간은 그를 녹여

바다가 되게 하리라

2005년 제5회 미당 문학상 수상 작품집, 《문예중앙》 에서

이 시를 읽으면서 손바닥과 손등 같은 뭉클한 느낌을 받았다.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 매달려 있는 삶의 끈 같은 이 불멸의 자연적 항거가 아닌가. 파도가 벼랑을 만드는지 벼랑이 파도를 외면하는지 서로 서로에게 주는 아픔만큼 그 존재를 통해 삶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절정을 이끌어 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 모든 순리가 이와 같은 이치일 것이다.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는 벼랑의 절개만큼 끝끝내 제 몸으로 녹여내는 파도의 고집은 숙명이리라. 우린 이 절대적 숙명으로 땅에 발 디디고 사는 삶의 벼랑에 파도 같은 나날들이 몰려오는 것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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