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형기 作 / 나무
[시가 있는 아침] 이형기 作 / 나무
  • 원주신문
  • 승인 2024.02.04 23: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무

이형기

 

나무는

실로 운명처럼

조용하고 슬픈 자세를 가졌다.

 

홀로 내려가는 언덕길

그 아랫마을에 등불이 켜이듯

 

그런 자세로

평생을 산다.

 

철 따라 바람이 불고 가는

소란한 마을길 위에

 

스스로 펴는

그 폭넓은 그늘.......

 

나무는

제 자리에 선 채로 흘러가는

천 년의 강물이다.

이형기 시집 『오늘의 내 몫은 우수 한 짐 』, [문학사상사]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여백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놓고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를 나는 생각한다. 사람마다 생각의 틀이 다르겠지만 생각의 틀은 삶이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편의 시가 그 속에 삶이라는 여백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은 시인은 그 여백을 수 백번 허물고 닦아내고 다시 똬리를 틀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나는 그런 여백이 가미된 시를 찾아 읽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본다. 그런 여백을 담아내는 시인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독자들도 그런 여백의 시가 삶을 윤택하게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나에게 있어 시란 이 세상의 모든 욕망을 덜어내고 허물을 씻어내는 물과 같은 여백으로 내 마음에 흐른다. 이형기 시인의 나무를 읽으면서도 현재의 현실은 미래의 현실을 얼마큼 뒷받침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여백을 느낄 만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삶의 속도에 세상이 움직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