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봉에서] 폐극장과 공간력(空間力)의 콜라보레이션
[비로봉에서] 폐극장과 공간력(空間力)의 콜라보레이션
  • 심규정
  • 승인 2024.02.18 17:4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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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력-사람을 모으고 머물게 하는 실제 공간이 가지는 힘)
주변 상권 활성화라는
지역의 난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아카데미극장 철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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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정<원주신문 편집장> 

대학 3학년생인 딸아이가 얼마 전 뜬금없이 “디지털카메라(약칭 디카)어딨냐”는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구입했던, 그러나 어디에 뒀는지 기억조차 없던 카메라였다. 고성능 카메라 기능이 장착된, 진화를 거듭하는 휴대폰이 나오는 마당에 디카라니? 딸아이로부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디카를 가진 친구들이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것. 고장 나면 전자부품 판매 시설이 밀집된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까지 원정을 가서 부품을 교체한다는 것이다. 옷장을 뒤지고, 서재를 수색(?)한 끝에 디카를 찾을 수 있었다. 

요즘 새로운 복고를 뜻하는 뉴트로(Newtro)가 대세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새로움을 느끼고 참신함을 경험하는 트렌드를 말한다. 여기에 더해 ‘오래되어도 가치가 있는 것(oldies-but-goodies)’, 혹은 ‘오래되어도 새로운 것(new-old-fashioned)’을 뜻하는 빈티지라는 단어에 스페이스가 더해져 ‘빈티지 스페이스’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오래되고 낡은 것에 브랜드가 더해지면서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경동시장 내 옛 경동극장에 들어선 스타벅스 1960경동점을 꼽을 수 있다. 경동시장은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국내 최대의 한약재 시장이다. 이곳 3층에 있는 폐극장 경동극장이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게 된 데는 상인회 측의 놀라운 선견지명이 있었다. 시장 활성화를 위해 오랫동안 방치됐던 극장에 스타벅스 입점을 요청했다. 처음에 난색을 표하던 스타벅스는 결국 입점하게 됐다. 

[사진=신세계그룹 뉴스레터]
[사진=신세계그룹 뉴스레터]

MZ세대의 새로운 놀이터로 떠오른 이곳에서는 다양한 상생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작은 무대를 꾸며 예술가들에게 공연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품목당 300원을 적립하는 이익공유형 매장이다. ‘건물주 위에 스타벅스’라는 말이 있듯 스타벅스라는 브랜드 파워와 오래된 극장의 리뉴얼이 만나 시그니처 스페이스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폐극장의 스토리텔링과 시그니처 스페이스의 콜라보레이션 성공사례는 또 있다. 

제주 도시재생의 1번지로 평가받는 제주 탑동에는 아라리오뮤지엄이 있다. 지난 1944년 개관 이후 멀티플렉스극장이 생기면서 문을 닫은 후 한동안 흉물이던 현대극장을 탑동시네마, 동문모텔Ⅰ, 동문모텔Ⅱ 3개 전시관으로 탈바꿈했다. 한국관광공사의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올라 있는 설명에는 “여기엔 ‘보존’과 ‘창조’라는 철학이 담겨있다. 옛 건물이 간직한 역사 위에 예술이라는 창조적인 옷을 입혀 서로 공존하는 형태로 만들었다. 그 안에는 개발에 밀려 쇠퇴한 원도심을 문화예술을 통해 되살려보자는 희망찬 꿈이 녹아 있다”라고 평가했다. 

[사진=제주 아라리오뮤지엄 홈페이지]
[사진=제주 아라리오뮤지엄 홈페이지]

투박하고 낡은 극장이라는 브랜드·서사(narrative)가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만나 시너지를 이루면 높은 집객력(集客力)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앞선 사례에서 우리는 또렷이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눈을 원주아카데미극장으로 돌려보자. 원주시가 인근 중앙시장 도시재생사업의 문화공유플랫폼과 연계해 공연시설 등을 조성하겠다고 지난해 말 극장을 철거했다. 아니 파괴했다고 일부에서는 주장한다. 아카데미극장 코앞에는 우리에게 정겨운 풍경으로 다가오는 전통시장, 중앙시장, 새벽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 주변은 더욱 을씨년스런 모습이다. 설날 차례를 지내기 위해 고향을 찾은 한 인사는 “웬지 허전한 마음을 지을 수 없다”라고 아쉬워했다. 야간에는 인적이 뜸한데다 인근 상가 건물은 텅 빈 채로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다. 공실이 해소되길 기대하는 것은 삶은 계란에서 병아리가 나오기를 바라는 격이란 암울한 평가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상권 침체의 현주소를, 원도심 쇠락의 상징적인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제주 현대극장은 1944년, 경동극장은 1960년,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개관했다. 잠재의식은 ‘기억의 보물 창고’라고 했다. 또 공간은 절대적인 물리양이 아니라 기억의 총합이라고 했다. 아카데미극장에 대한 기억의 뿌리는 리셋되지 않고 우리의 뇌간에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주변 상권 활성화라는 지역의 난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아카데미극장 철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물안 개구리식, 근시안적 접근법이 아닌지 곱씹고 또 곱씹어 봐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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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 2024-02-21 18:04:26
더이상하지 말았으면 이제는관련기사만 나와도 짜증이 나네요

깡시장 2024-02-18 19:53:21
따봉~~~

원주시민 2024-02-18 18:43:57
찍어준 내손이 부끄러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