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박남준 作 / 각
[시가 있는 아침] 박남준 作 / 각
  • 원주신문
  • 승인 2024.02.1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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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준

 

칼을 들고 목각을 해보고서야 알았다

나무가 몸 안에 서로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는 것

촘촘히 햇빛을 모아 짜 넣던 시간들이 한 몸을 이루며

이쪽과 저쪽 밀고 당기고 뒤틀어가며 엇갈려서

오랜 나날 비틀려야만 비로소 곱고

단단한 무늬가 만들어진다는 것

제 살을 온통 통과하며

상처가 새겨질 때에야 보여주기 시작했다

 

박남준 시집 『적막』, [창비] 에서

이 詩, 각을 읽으면서 시간이라는 무늬는 쉽게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층층 쌓아 오르는 시간들이 하나의 산이었고, 강이었고, 하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산도 강도 아닌 허공을 오르기 위해 산 같은 고집과 강 같은 세월을 허공에 층층 쌓아야 한다. 그래야 나무의 결이 새겨지고 나무의 둘레가 커지게 된다. 이 나무의 결을 따라 칼을 통해 각의 흐름을 읽어내는 있다는 것을 박남준 시인은 말하고 있다. 우리는 무한대의 세월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시간의 무늬 하나 바라볼 정도의 시간만 허락받았을 뿐이다. 나무를 칼로 깎아내는 일은 오랜 시간 숙련된 손재주가 필요하다. 박남준 시인은 칼을 들고 목각을 하면서 그 결 속에 촘촘 박힌 시간들을 다듬으며 지나간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그 아름다운 문양의 결에서 우리 생의 질곡을 느낀다. 어느 세월은 문양이 부드럽고 어느 세월은 단단하고 어느 세월은 가지가 뻗어 옹이 결을 받아내야 한다. 나무의 결과같이 우리들 삶의 흐름도 다르지 않음을 바라보게 한다. 결과적으로 각은 둥글게 보였던 삶의 크기를 평면으로 펼쳐놓고 보는 나무들의 세월을 더듬어 보게 한다. 사람의 마음도 겉으로는 누구도 바라보지 못한다. 박남준 시인의「각」은 나무의 결의 문양을 평면으로 펴 보면서 사람의 마음이 어떠할 것인지를 추측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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