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가?
[기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가?
  • 박정원
  • 승인 2024.02.25 2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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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년층은 높은 주택가격과
자녀 교육에 소득 대부분을 지출하고 나니
막상 자신의 노후대책은 세우지 못했다.
△박정원 [상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박정원 [상지대 명예교수,경제학]

지구상에 태어난 인간은 아무리 뛰어난 가문 출신이어도, 막대한 부와 재산을 상속받았어도, 혹은 엄청난 힘과 재주를 가졌어도 행복(well-being)과 고통(ill-being)이 교차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만약 자신의 인생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면, 다음 중 어떤 인생 여정을 택할 것인가? ‘젊었을 때 행복하게 살다가 노년에 힘들게 사는 인생’과 ‘젊었을 때 힘들게 살다가 노년에 행복하게 사는 인생’.

아마 대다수는 ‘노년이 행복한 인생’을 선택할 것이다. 젊어서는 사서 고생도 할 수 있지만, 노년은 그래도 좀 품위 있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문명국들은 노년이 행복하도록 노동정책과 사회복지 등 여러 제도들을 마련해 놓고 있다. 2016년, 행복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세계 45개국에서 국가마다 9천 명 이상의 표본을 수집 분석한 결과 연령에 따른 행복도 변화가 실제 그렇게 나타났다. 그래프는 예외 없이 U자형의 모습이었다. 꿈 많은 청년 시절에 행복도가 높고, 성인이 되면 점차 낮아지다가 중년에 이르러 최저점에 도달하고 이후 다시 상승해 노년에 제일 높은 상태에서 삶을 마감하게 된다.

그러니까 선진국들의 중요 과제는 중년 시절 낮아진 행복도를 가급적 빠른 나이에 반등시키는 것이다. 조사를 보면 덴마크, 캐나다, 스웨덴, 호주, 네덜란드, 미국, 아일랜드, 영국 등은 40대에 행복도가 바닥에 이르렀다가 다시 상승했다. 핀란드, 브라질, 독일,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인도, 헝가리 등은 50대에 반등한 국가들이다. 오스트리아, 베네수엘라, 칠레, 페루, 폴란드 등은 60대가 되어서야 반등했다. 체코, 러시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은 70대에 이르러서야 행복도가 상승했다.

아쉽게도 한국과 일본은 이 조사에서 빠져 있다. 두 나라의 학자와 조사기관들이 각자 자기 나라의 행복도를 조사해 봤다. 그 결과 일본은 좀 밋밋하지만 그래도 U자형의 형태를 갖고 있었는데, 한국은 아예 정반대의 곡선이 나타났다. 즉, 컵(∩)형태의 연령-행복곡선이 그려졌다. 충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인은 중년의 초기에 행복도가 가장 높다가 이후 점점 낮아지는데, 나이가 들어 행복도가 최저점에 있을 때 삶을 마감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조사 때마다 매번 같은 결과가 나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여기서는 한 가지 문제만 짚고자 한다. ‘노년의 노동’ 때문이다. 한국의 노년층은 젊은 시절 세계에서 최장 시간을 노동해야 했다. 그러나 높은 주택가격과 자녀 교육에 소득 대부분을 지출하고 나니 막상 자신의 노후대책은 세우지 못했다. 성장한 자녀가 나이 든 부모를 부양하던 관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복지국가라면 국가가 자녀의 역할을 대신 해주지만 한국은 그렇지도 못하다.

그래서 우리의 어르신들은 정년퇴직 이후에도 편히 쉬지 못하고 생활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유럽에는 60세 넘어서 일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이 좋아서 하는 분들만 있을 뿐이다. 일을 하더라도 본인이 좋아서 하는 것과, 어쩔 수 없이 내몰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무튼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이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 현실이다. 어떻게 이 시기가 인생의 황금기가 될 수 있겠는가?

통계청이 얼마 전 발표한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취업자 수가 약 38만 명 증가했는데, 그중 35만 명이 60세 이상이라고 한다. 엄동설한에 일을 하는 어르신들이 그만큼 증가했다는 얘기다. 현재, 우리나라의 70세 이상 취업자 수는 155만 명이다. 그분들에게 언제쯤 안식이 찾아올까? 취업자가 증가했다는 발표에 이 땅 어르신들의 지난한 삶이 묻어 지나간다. 진정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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