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억, 그리고 새로운 시작 원주시립미술관
[기고] 기억, 그리고 새로운 시작 원주시립미술관
  • 심규정 기자
  • 승인 2024.02.26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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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 [사단법인 한지개발원 사무국장]
△이주은 [한지개발원 큐레이터]

예술작품은 작가의 사상,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메시지 등을 담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예술작품은 그 작품을 ‘특정한 공간’ 설치·전시하여 작품의 의미를 충만하게 하거나 때로 역설적인 표현을 하며 완성된다. 미술의 물리적인 단계인 작품 전시는 근래에 화이트큐브를 벗어나는 등 더욱더 전시공간에 대한 중요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으로 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치욕의 공간. 그 곳이 수탈이 아닌 문화적 풍요의 공간으로 재탄생되는 현장에 찾아갔다. 사실 공간적인 궁금증보다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 )라는 현대미술의 거장이 대전에서 개인전을 연다는 사실이 헤레디움(HEREDIUM은 라틴어로 ‘유산으로 물려받은 토지’)으로 나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역사와 신화를 끊임없이 탐구한 작가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R. M. Rilke, 1875~1926)의 가을을 주제로 한 시들을 회화로 재해석하는 신작들을 통해 공간과 작품이 어우러지는 묘한 감동을 받았다.

대전의 헤레디움은 신한공사, 체신청, 타일가게로 쓰였던 곳을 재단법인 CNCITY마음에너지재단이 매입하며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고 석고보드로 숨겨졌었던 실내 천정, 나무창 등의 골격을 그대로 살려 근대건축물의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다. 헤레디움을 직접 마주하니 가히 등록문화재 제98호로 지정된 건축물답게 아름다웠다. 특히 목재 반자틀을 설치, 회몰탈로 미장하여 마감한 천정 몰딩은 1920년대 건축 당시 수작업으로 제작되었고 리노베이션 과정에서도 작업자가 수작업으로 석고로 문양을 떠서 복원하여 아름다움을 유지했다고 한다. 

△ 헤레디움 실내 전시장

몇 년 전, 한 도시의 경쟁력을 발현할 수 있는 것이 문화예술공간이고 원주시립미술관의 건립이 임박하여 잔뜩 긴장했다고 본지에 기고했었다. 원주시에 위치했지만 시민이 들어갈 수 없었던 금단의 공간 옛 미군기지가 리노베이션과 증축을 거쳐 문화공간으로 거듭남은 원주시민으로서 가슴 뛰는 일이다. 원창묵 전 원주시장 재임 당시 2018년부터 추진된 이 사업은 원주의 생명운동가이자 사상가, 서화가였던 장일순 선생의 생명사상을 바탕으로 했다. 2020년부터 2023년 공시된 원주시의 정책실명제 중점관리 대상사업 사업내역서에 따르면 사업비가 100억 원에서 188억 원으로 거의 배로 증액되고 사업 기간은 조금 늦춰졌다.

2021년 원주시 시립미술관 건립 문화체육관광부 설립타당성 사전평가를 통과, 2022년 선정된 설계공모안도 기존 건물의 외관을 살려 역사성과 장소성을 보존하고 기존 벽체와 신설 벽체의 얽힘을 통해 옛것과 새것을 함께 느끼도록 구성하여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원주시립미술관은 군사시설이었던 캠프롱 컨벤션센터와 간부숙소를 리모델링하거나 증축할 예정이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헤레디움 뿐만 아니라 국군기무사령부를 증·개축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과거의 연초제조창을 사용한 청주공예비엔날레 베뉴, 마포석유비축기지를 문화비축기지로 변경한 우수사례는 전시공간, 행사공간이 지나간 역사를 고찰하고 시민과 새로운 역사를 함께 만들어 가는가 하는 반면 리모델링 이후 관리 소홀로 영원히 역사로 사라지는 공간들도 있다.

‘공립 미술관 건립으로 도민의 문화 욕구 충족과 예술인의 창작 의욕을 북돋아 지역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캠프롱을 문화기능 위주 공원으로 조성하여 문화 향유 기회 제공’한다는 기존의 목적과 부합하며 완공될 원주시립미술관.

완공까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시립미술관 건립을 위해 시정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온 원주시의 전, 현직 시장의 의미있는 발걸음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한 원주시립미술관 건립 기본계획 및 운영방안 연구용역에서 제시한 중요 키워드인 ESG, 테크놀로지, MZ세대를 염두에 두고 미술관 건립 세부계획에 반영하여 중부내륙 중심 도시로서 문화적 역량과 기반이 충만한 미래의 원주시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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