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를 묻다] 인간의 용서
[안부를 묻다] 인간의 용서
  • 임이송
  • 승인 2024.03.10 2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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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용서는
과거의 상처받은 나와 사과를 바라는
지금의 나를 화해시켜 가볍게 만드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임이송 [소설가]
△임이송 [소설가]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는 일이 가능할까. 나는 오랫동안 이 명제를 두고 고민해왔다. 상대를 용서했다고 확신한 후 한번이라도 그 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행여 그런 사람이나 사례가 있다면,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온전한 용서는 끔찍했던 그 사건조차 잊어버려야 한다. 마치 그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나는 나에게 일어났던 오래된 사건 하나를 작년부터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일을 이젠 내 인생에서 말끔히 지워버리고 싶어서다. 망설이던 일을 드디어 실천하기로 했다. 아기를 낳은 지 채 한 달도 안 되었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30년도 더 된 일이다. 얘기 한 번 나눠본 적 없는 사람이 나에게 뜬금없이 한, 그 행위 때문에 나는 오래도록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그 일은 뼛속에 묻힌 채 나이를 먹었다. 나를 모르는 그가 나에게 왜 그런 악행을 저질렀는지, 이제는 물어보고 사과를 받고 싶었다. 그가 용서를 구한다면 조금이라도 용서를 해줄 용의도 있었다. 그 일은 이후에 많은 사건을 연쇄적으로 일으켰지만, 그는 그러한 상황을 모른 채 살고 있었다. 내 마음에만 수없는 해일이 일었다가 가라앉곤 했다.

그에게 전화를 했다. 나에게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묻자, 그는 그런 적이 없단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란다. 만일 자신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면 그건 사람으로서는 해선 안 될, 몹쓸 짓이란다. 그는 오히려 내가 없는 일을 만들어 자신에게 덮어씌운다며 경악스러워했다. 그간 수없이 시뮬레이션 해왔던 상황 중엔 이런 장면은 없었다. 그가 부인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사과를 받고 어느 정도를 용서해주어야 할지 고민할 새도 없이, 나는 또 다른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내 희망은 가뭇없게 사라지고 졸지에 나는 가해자가 되고 말았다.

살면서 주변에 사람이 사람을 용서한 사례를 별로 본 적이 없다. 기사에서 본 적은 있다. 자기 자식을 죽인 범죄자를 양아들로 입양했다는. 나는 지금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부디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그 아버지는 살면서 문득 죽은 아들이 생각나지 않았을까. 아들을 죽인 양아들이 원망스럽지는 않았을까.

용서는 인간이 행하는 형이상학적 행위 중에 최상층부에 존재하는 성스러운 일이다. 그 행위에 이른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곧 신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끔 가상의 나를 만들어 그를 움직이게 한다. 그는 평소 내가 할 수 없는 행동을 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나는 거기에 속아 가상의 나에게 커다란 임무를 부여한다. 가상의 나는 호기롭게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낯선 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 일들은 어김없이 실패로 끝나버리고 만다. 가상의 나에겐 순발력과 융통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수많은 행동 중 타인이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때론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것이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러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오래 묵힌 그 일을 이 나이쯤엔 털어내고 가벼워지고 싶었다. 그 생각만이 너무 앞섰다. 어쩌면 나는 그에게 용서보다는 일방적인 사과만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용서란, 진정으로 그 사건의 그림자조차 잊어버려야 가능한 일이다. 그가 나에게 곡진하게 사과를 해왔어도 나는 또 다른 찌꺼기들을 끌어안은 채 힘들어 했을 게 뻔하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용서는 과거의 상처받은 나와 사과를 바라는 지금의 나를 화해시켜 가볍게 만드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그 몸짓이라도 할 수 있으면 훌륭한 일이다. 온전한 용서는 아무래도 신의 몫이고 영역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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