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충전소] 마에스트로 ‘짜잔~’
[지식충전소] 마에스트로 ‘짜잔~’
  • 최광익
  • 승인 2024.03.24 2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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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악기가 자기의 소리를 내지만,
드러나거나 묻히지 않게 하모니를 만드는 것은 지휘자의 몫이다.
△최광익 [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장·교육칼럼니스트]
△최광익 [전 하노이한국국제학교장·교육칼럼니스트]

구글은 2000년대 중반 가장 혁신적이고 성공한 기업의 반열에 올라섰다. 사업이 잘되고 돈이 흘러넘쳐 직원들에게 높은 급여, 푸짐한 혜택, 혁신적인 제품 연구 기회로 세계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이 되었다. 매달 10만 건의 입사지원서가 쇄도했고 지원자의 대학수학능력시험(SAT) 성적, 대학 GPA, 학위 등을 검토해 최상위층의 지원자를 채용했다. 그 결과 구글에는 수석졸업, 하버드, MIT, 스탠포드 등의 명문대 출신의 화려한 이력을 가진 직원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조직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가 감지됐다. 

왕년의 NBA 스타 이사야 토마스(Isiah Thomas)는 2003년 뉴욕 닉스의 감독을 맡으며 세계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닉스를 더욱 보강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토마스는 선수들을 경기당 평균 득점을 기준으로 농구 재능을 평가했다. 뉴욕 닉스의 탄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막대한 비용을 들어 NBA 최고의 득점포들로 팀을 구성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4시즌 내리 고전을 면치 못하고 하위권을 맴돌 지경에 이르렀다. 

코스트코는 미국의 대규모 창고형 할인마트 운영 및 소매 유통기업이다. 이 회사는 직원을 채용할 때 성적과 학위는 제쳐두고 업무 적합성을 중시한다. 명문대학 졸업생 채용보다 지역 대학 재학생을 파트 타임으로 모집한다. 누구라도 코스트코 환경에 잘 맞는 사람임이 증명되면 파트타임 직원이 부사장에 오르거나 업무 보조원이 판매 총괄책임자가 될 수 있다. 이 회사는 ‘일하기 좋은 최고 기업’에 4년 연속으로 뽑혔고 직원들의 충성도가 높은 기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구글, 뉴욕닉스, 코스트코의 사례는 학력이나 득점 같은 일차원적 선발로는 좋은 팀을 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암시한다. 구글의 경우 성적과 학위 같은 기준으로는 재능을 가진 수많은 지원자들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마침내 지원자 필수자격에서 학위를 제외하고 협업능력이나 배우고자 하는 자세 등을 중시하는 선발제도로 바꾸었다. 농구 경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승패는 득점, 리바운드, 공 가로채기, 어시스트, 블로킹에 좌우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다섯가지 능력은 서로 연관성이 없다. 예를 들어 공 가로채기에 뛰어난 선수는 대개 블로킹 실력이 좋지 않다. 가장 잘 짜인 농구팀은 농구 재능이 상호 보완을 이루는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라고 한다. 토마스의 닉스팀은 수비에서 형편없을 뿐 아니라 선수 각자가 다른 선수를 받쳐주기보다 자신의 득점 올리기에만 혈안이 돼 있었던 것이다.

대기업부터 동창회에 이르기까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팀 구성은 모든 조직의 고민거리다. 조직의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구성원 모두 자기 목소리를 내고 최고 의사결정권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조직이 있다. 현대 조직이론가들이 이상적 조직으로 오케스트라를 주목하는 이유다. 오케스트라 총인원은 70명에서 100명 정도다. 구성하는 악기는 다양하지만 어떤 악기가 더 중요하고 어떤 악기가 덜 중요하지는 않다. 모두가 자기 소리를 내고 다른 악기와의 조화를 통해 가장 완성도 높은 음악인 교향곡을 만들어 낸다.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휘자다. 지휘자는 단원의 선발, 곡의 선정과 분석, 공연장의 지정, 무대구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지휘자는 악기에 대한 이해와 곡의 분석능력이 탁월하고 각 악기의 개성과 문제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 누가 어떻게 연주하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오케스트라에는 중간 관리자 같은 것은 없다. 모든 단원이 직접 지휘자와 직접 소통한다. 모든 악기가 자기의 소리를 내지만 드러나거나 묻히지 않게 하모니를 만드는 것은 지휘자의 몫이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거장이나 명인을 의미하는 ‘마에스트로’라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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