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은 세상을 모두 둥글게 잠재운다
김영남
깎아주고 덤이 있는 골목.
그 골목은 좌판 사과가 둥글고,
리어카의 손잡이가 둥글고,
그리고 그 흥정이 둥그네.
거기에는 소리를 지르면
순이, 철이, 용호네 아줌마들이
골목에서 둥글게 모여드네.
구불구불 세상을 돌아서 골목이
하늘로 올라가고, 밤이 되면
둥근 동산을 연탄처럼 굴러서
달이 떠오르네.
그러나 보게나!
둥글지 못해 한 동네를 이룰 수 없는 것들,
둥근 것을 깔아뭉개고 뻣뻣하게 서 있는 저 아파트들을.
이곳에선 둥글지 않으면 모두가 낯설어한다네.
나도 허리를 둥글게 말아 방문을 여네.
김영남 시집 『모슬포 사랑』, 《문학동네》에서
김영남 시인의 시(詩) 「그 골목은 세상을 모두 둥글게 잠재운다」를 읽었던 때가 2001년이니 이 시의 세월도 20년 가까이 흘렀다. 그러니 시에서 나온 마을도 더 많이 변해 있거나 아주 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다. 우리가 살아왔던 마을은 담을 쌓았던 돌도 둥글었고, 길에 깔린 자갈도 둥글었다. 모난 것은 모두 물길 가로막는 둑에 쌓였었다. 지금 어느 곳을 모더라도 둥근 세상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집만 각진 게 아니다. 사람의 마음도 높은 아파트나 빌딩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고 제 주장만 옳다고 여기저기 깃발을 흔들어 댄다. 살 만큼 살았다는 사람들도 마음이 둥글게 변해있지 않다. 더 날카롭고 각진 벽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고 보인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이 발전되고 풍족한 삶의 혜택을 받고 살고 있다고는 하나 모두 이 사회에서 격리된 외로운 늑대들처럼 더 고독하다고 울어대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구불구불 골목길에서 펼쳐진 삶의 풍경이 가난하다고 모두 불도저로 밀어내고부터는 우리 마음을 잠재울 그런 별빛도 사라졌다. 꿈을 가져다주고 마음을 곱게 보듬어 주었던 사람들도 다 사라졌다. 사람 대신 스피커에 저장된 목소리가 글을 읽어주며 뛰지 마라, 담배 피우지 마라, 애완견 배설물을 잘 치우라는 부탁의 말만 들린다. 세상이 점점 더 뾰족하고 날카롭게 변해가는 것을 보며 둥근 골목이 더 그리워진다. 그래도 어느 날인가 사람들은 서로 둥글게 가슴을 만들 것이라 생각해 본다.